며칠 동안은 가만히 있어도 휘파람이 나왔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늘 그렇듯 돈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네. 글쓰기 강사 김흥부입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OO 복지관에 땡땡 과장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이번에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작가님 이력을 보니 책도 많이 내시고, 이 분야에 강의를 잘하실 것 같아서요.”
이게 웬 오랜만에 강의 연락인가! 정말 갑자기 시원한 콜라를 마신 듯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조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렇지 않은 게 답을 했다.
“네, 그 강의는 이미 진행한 적이 많아서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의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시겠어요?”
“아, 그게 작가님 저희 위치가 전북 군산에 있어서요. 작가님 계신 부산에서는 좀 멀지요? 그리고 강의 시간은 1시간입니다. 강사료는 10만 원입니다. 더 길게 하려고 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작가님. 강의 시간은 아마도 아침 9시가 될 듯합니다.”
“아…. 그렇군요. 예산 부족이면 혹시 교통비나 식대, 숙박비는 지원이 어려울까요?”
“네, 작가님. 저희가 너무 안 좋은 상황에서 섭외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작가님 생각해 보시고 어려우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 입이 턱 막혔다. 우선은 그래도 알겠다고 말하고 웃으며, 아니 대충 웃음 비슷한 소리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강의를 갈 때 올 때 차비만 빼도 7만 원이 넘는다. 게다가 한 끼 식사라도 사 먹으면…. 강사료는 오히려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당장 그 돈을 낼 만한 돈이 없고, 카드로 결제해야 하는데 이걸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
우선 담당자에게 통화는 조금 미뤄두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설거지하고 있는 아내. 10년도 넘은 앞치마를 매고서, 아무런 표정도 없는 뒷모습을 보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기, 저…. 강의 의뢰가 들어왔는데 말이야. 강의료가 10만 원이래. 근데 거기가 군산이라….”
갑자기, 아내가 물을 껐다. 뚝뚝…. 조용히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거실에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그녀. 입술을 들썩이더니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앞치마를 벗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확실히 그녀의 마음 소리를 들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렇다.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니 뭐, 당연히 거절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7년 동안 강사료에 연연하지 않고 강의를 다녔다. 무료 강의도 참 많이 다녔고, 아주 시골에도 당시 내가 돈이 있다면 어디든 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고맙다고 내 손을 잡아줄 때면 천억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 무료로 글을 봐줄 테니 메일로 연락만 하라고 큰소리를 땅땅 쳤다. 그런데 결국 지금은 그들이 연락이 와도 내가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는 자기소개서와 반성문, 혹은 아이와 미국 여행 갈 때 들리면 좋을 곳 리스트 같은 것을 의뢰자가 원하면 정리해 주는, 글 벌이로 살아가고 있기에 시간이 없다.
‘결국, 내 선의는 어쩌면 지키지도 못하는 약속이 되었네.’
내 선의는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되었고 돈이 없으니 아무리 의도가 좋은 강의도 가지 못한다. 내가 정말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글쓰기에 많이 이야기했지만, 아니다. 돈이 없으면 내가 글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또다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봤던 제비 님의 글 캡처본을 다시 열었다.
‘맞아, 도메인을 만들라고 했다. 제비님이 시키는 대로 해 보자.’
도메인을 신청할 수 있는 사이트 몇 가지를 제비님은 친절히 링크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중 하나를 클릭을 해서 들어갔다. 도메인이란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내 주소, 나만의 홈페이지에 쓸 주소이다. 주소 그 자체를 사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도메인 주소를 heungboo.com으로 주소를 정했다. 그런데 어…. 비용이 들어간다. 1년에 2만 원 정도. 제비님은 그 정도 돈은 크지 않으니 꼭 만들라고 적어 놓았지만 내게 2만 원은 아주 큰돈이다. 10일 동안 차비로 사용할 수 있고, 3일 동안 식사를 할 수 있는 비용. 음…. 고민이 되었다. 놀부가 준 돈으로 카드값을 내서, 현재 카드는 사용이 된다. 그리고 계속 이대로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얼굴을 손으로 여러 차례 쓸어 올리다가 결정했다. 사자, 도메인!
도메인 구매하기를 누르고 카드번호를 입력했다. 금방 이 주소가 내 것이 되었다는 게 떴다. 오…. 좋다, 좋아. 그런데 문제는 제비님의 글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그다음을 알 수는 없었다. 어떻게 연결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우선은 도메인을 샀으니까 다른 사람이 이제 흥부 닷컴을 쓸 수는 없다. 내가 내 땅을 산 셈이다! 오프라인에는 비록 내 집도, 내 땅도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내 땅이 있다!
한 시간쯤 기쁨의 피가 내게 흘렀던 것 같다. 곧이어 닥치는 현실적인 의문.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쓰는 건데.’
제비님의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호스팅? 워드프레스? SSL?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아, 이래서 워드프레스 아니라 네이버 블로그를 다들 하는 건가. 나도 그냥 네이버 블로그도 잘하지도 못하면서 똑같이 글 쓰는 공간인데 괜히 무료도 아닌 워드프레스를 하려고 지금 설친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도메인 이후 글까지 읽어 보고 도메인 등록할걸. 환불은 안 되는 건가.
한참을 끙끙대다가 제비님에게 댓글을 남겼다. ‘ 도메인 샀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라인에서 글 제대로 써본 적 없고 돈 벌어본 적도 없는 그런 부분에서는 초보 작가입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아주 간절한 상황입니다.’
도움이 되었어요, 생각보다 쉽네요!라는 댓글 사이로 내 댓글만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내게는 절박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 워드프레스가 나를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만이 아니라 내 가족을. 그래서 글 쓰는 제비라는 아이디를 기억해서 인스타그램에서도 찾고, 블로그에서도 찾고 스레드에서도 찾아 모두 같은 댓글을 달았다. 글 쓰는 제비님이 무서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내게 남은 동아줄을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댓글을 모두 남겼을 때 아내가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여보, 강의는 여보가 하고 싶으면 해야죠. 된장찌개 끓여놓을 테니까 오늘 저녁이랑 내일 아침에 먹어요. 저는 내일 1근이라 일찍 출근해야 해요.”
하얗게 질린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나 대신해서 3교대 근무를 하는 아내. 우리 집의 현실적인 가장 역할을 하는 아내. 아내를 위해서라도 나는 이제 변해야만 했다. 더 이상 출간하고, 북토크하고, 돈 없이 하는 행사마다 가서 무료 강의를 하고. 글 벌이로 이런저런 이름 없는 글을 쓰는 걸 멈춰야 했다. 내 땅에서 내 글을 쓰고, 사람들이 들어오게 만들어야 했다.
어?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내가 뭐라도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답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흥부님. 글 쓰는 제비입니다. 도메인 구매 축하드려요. 다음 단계는 워드프레스에 연결하는 거예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초보도 함께할 수 있어요. 해봐요!”
그 뒤 며칠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떤 아빠를 대신해서 6살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축하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블로그 글 한 편을 대신 써주기도 했고 누군가의 대학 과제를 대신해 주기도 했다. 아주 싼 단가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면서도 금요일 밤 9시. 제비님과 줌 미팅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금요일 밤 9시. 친절한 제비님이 먼저 줌 주소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 주소로 10분 전에 들어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비님을 기다렸다. 정각이 되기 3분 전 제비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비님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주 친절하고, 예의 바른 내 나이 또래의 남성이었다.
“저는 시애틀에 살고 있어요.”
오, 멋지다. 시애틀에 산다고? 그럼, 교포라는 건가? 그래서 그런지 한국말을 할 때 묘하게 외국어 같은 리듬이 느껴졌다. 그 리듬은 서울말도 아니고 사투리도 아니었다. 그냥 그 단어마다 높낮이를 다르게 하는, 아주 천천히, 아기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한국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아무튼 신선하고 기분 좋은 그런 높낮이로 하나씩 말을 해주기 시작했다.
“제가 원래 워드프레스를 연결해 주고, 활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건 제가 컨설팅업체에서 운영하는 하나의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이 정도의 비용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
제비님의 사이트를 보니, 그 사이트는 대략 1년 동안 워드프레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이고 대략 140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하지만, 제가 작가님에게 이 돈을 받지 않고, 워드프레스의 사용법에 대한 알려드릴 거예요.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뭔가요?”
우선은 그 정체성부터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돈을 버는 글쓰기 생산자로 살겠다고 다짐하셔야 합니다.
“작가님은, 자신이 작가라는 그 정체성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작가님은 하루하루 글을 쓰고, 그 글에 광고도 붙이고, 홈페이지에 사람에게 많이 유입시킬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글을 작가님의 공간에서 써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책을 몇 권 냈든, 글쓰기 생산자로 워드프레스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오늘 글을 쓰지 않으면 내일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각오로 쓰셔야 해요. 모두 온라인 공간에서 동등하게 시작해요. 작가님이 그런데 난 책을 7권 낸 작가이고 나는 좀 다르다는 마인드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요.”
사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말씀드려도 될까요?
현재 어떤 일로 생계를 유지하시나요? 글쓰기로 돈은 얼마 정도 벌고 계시나요?
“저는 현재 인세로는 수입이 없다시피 하고요. 다른 사람 글을 대신 써주면서 돈을 벌고 있어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벌어요. 그 외 비정기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요. 1시간당 10만 원 정도를 받는데요. 수업 자체가 별로 없어요.”
제비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작가님이 그럼 10만 원짜리 수업이 지금보다 많으면 생계에 도움이 되시겠네요?”
“네, 아주 도움이 되죠. 제가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있거든요. 지금은 아내가 먹여 살리고 있지만요.”
“좋습니다. 그리고 생계를 위한 글쓰기는 당분간은 계속하시되 곧 그만두시고 이 워드프레스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마 한두 달 정도에 제가 말씀드리면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그만두고 여기서 수익화를 이루셔야 합니다.”
제비 님의 표정은 비장했다. 하지만 나도, 아니 내가 더 비장하다. 어차피 물러서도 갈 곳도 없다.
“무조건 따라서 가겠습니다. 제비임! 제비 님의 말씀대로 할 테니 무료로 꼭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저도 약속 하나 하죠. 제가 수익화를 이루면 이 서비스에 해당하는 금액 꼭 내고 싶습니다!”
제비님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곧이어 말했다.
우리가 피차 시간도 없으니까요. 제가 도메인을 워드프레스 연결을 해 놓겠습니다. 이번 주에 연결이 되면 작가님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그 주 일요일까지는 완료하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