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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는 시간

책을 냈지만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작가 흥부입니다.

by 김필영


“첫 과제는 작가소개페이지 작성하기입니다.”





제비는 줌으로 다른 작가의 작가소개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이 작가는 위에 이렇게 사진을 해놨는데, 이렇게 변형을 주는 건 나중에 해도 충분해요. 우선은 땡땡 작가님처럼 이렇게 기본으로 적어보세요. 제일 위 작가 사진 넣고, 밑에다가 큰 제목 쓰고, 아래에 내용을 쓰면 됩니다. 제목은 옆에 보면 제목 표시가 있어요. 이걸로 선택해서 쓰시면 됩니다. 흥부 님이 쓴 책 7권 여기 다 쓰고요. 칼럼 연재하신 거 있으면 쓰고, 그 외 이력 같은 것도 이력으로 해서 여기 별도로 담아주시면 됩니다. 무엇보다 내가 어떤 작가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작가님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정도는 쉬울 것 같은데요. 당장 내일까지도 할 수 있어요!”

“일요일까지 하셔도 충분합니다. 그럼, 일요일 밤 9시,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제비가 사라졌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오늘 제비가 한 말 중 작가라는 정체성보다 온라인 글 생산자라는 정체성을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작가인데 하는 마음이 내게는 많이 있었다. 나는 책을 7권 낸 작가이다. 사이에는 대단한 이라는 글자를 혼자만 숨겨놓고 읽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단하긴. 생계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나 흥부인데.

줌 미팅이 끝나니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인 딸 둘이 내 옆으로 쑥 왔다.

“아빠, 이제 부자 되는 거야?”

“어?”

“아빠, 꼭 부자 돼 알았지!”

애들은 뭐가 좋은지 둘이 함께 까르르 거리며 방을 나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게 묻었고, 나는 다시 한번 이 프로젝트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준 제비님께 감사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날 오후 4시 -

이상하다. 한 번에 휘갈겨질 줄 알았다. 작가소개페이지 같은 거. 그런데 당최 무슨 말로 나를 적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뭐든지 하는…. 다이소 같은…. 아, 아니다…. 그럼 책을 7권 쓴…. 아,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을 치유하는. 글쓰기를 도와주는. 할 말이 너무 없는 게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하나의 압축된 메시지로 전달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이렇게 스스로가 정의가 안 내려지는데 강의 담당자는 날 어떤 강의에 매칭을 했을까? 섭외할 때 너무 어려웠겠다. 하나로 밀고 갈 이야기가 필요해.’

다른 작가들의 작가소개페이지를 보았다. 마음을 치유하는 작가. 또, 글쓰기를 잘하게끔 해주는 작가. 내 스토리로 타인을 위로해 주고 싶은 작가. 뭔가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아 도대체 나는 뭘 써야 할까?

“글쓰기 강의를 통해 변화를 끌어내는 작가 흥부입니다. 저는 글쓰기를 통해 성찰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머지는 이력과 경력으로 채웠다. 한때 그래도 여러 강의를 다녔고, 낸 책도 7권 말고도 각종 공저들을 포함하면 13권이나 되었다. 그것들을 모두 적고 나니 마음에 들었다.

다 완성하고 일요일에 제비와 줌 미팅을 했다. 제비는 내게 조금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주신 작가소개 페이지 잘 봤어요. 흥부 님은 사실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작가이고, 워낙에 또 글을 잘 적으시는 분이라 제가 하는 피드백이 조금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한 말씀드려도 될까요?”








침을 꼴깍 삼켰다. 무슨 말씀하시려고 저렇게 뜸을 들일까.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적힌 대로 흥부님 지금 이렇게 잘 나가고 계시는가요? ”

“아, 아뇨. 저는 지금 먹고살기도 어려운 무늬만 작가인 사람이에요. 근데 작가소개인데 그래도 좀 그럴듯하게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강의 소개가 이 페이지로 들어올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제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흥부 작가님의 그 마음을 그대로 여기 작가페이지에 담아주세요. 흥부님이 제게 썼던 댓글 때문에 제가 이렇게 흥부님께 무료로 컨설팅해 드리고 있는 거예요. 저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처럼 이 글, 읽는 사람들 마음도 흔들어야죠. 이런 뻔한 작가페이지로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댓글을 남겼을 때…. 그때 나는 너무나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것저것이 다 안 되고, 강의를 갈려고 해도 교통비까지 없고, 한 달에 100만 원이 안 되는 수입으로 사는 상황. 그렇다. 그렇게 써야 하는구나.

우선은 제비에게 알겠다고 말했다. 수정해 놓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웃으며 내게 두 번째 과제를 내주었다.





“작가님, 혹시 쿠팡파트너스를 아시나요?”

쿠팡파트너스를 신청하면 쉽게 말하면 판매하려는 물건을 링크로 달아놓으면 그 링크로 들어간 사람이 24시간 이내 그 물건을 그쪽으로 구매 시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미국에는 비슷한 게 아마존에도 있어요. 작가님은 우선 쿠팡파트너스부터 도전을 해볼 거예요. 수수료가 3% 정도이니 큰돈이 되지는 않을 텐데요. 작가님 책이 총 13권이니 이 책들 중에서 쿠팡에 지금 올라가 있는 것들은 모두 쿠팡파트너스 링크를 만들어서 워드프레스 책 소개 쪽에다가 함께 달아놓을 거예요.

그럼 그 책이 팔렸을 때 작가님은 인세를 받을 수 있고 쿠팡파트너스 수수료도 받을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데 안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소개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고 그 페이지로 쿠팡파트너스링크 걸기까지 해볼 거예요.

흠.. 순간 생각을 해보았다. 책값이 15000원이면 1%면 150원, 3%면 아주 작은 돈이다. 그런데 그 잔돈을 벌려고 내가 그 짓을 해야 할까? 나는 엄연히 책을 쓴 작가인데.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든지 해보기로 했을니까.

“그럼, 책 소개 페이지를 작성하고 쿠팡파트너스 등록하기. 그리고 작가페이지 수정하기까지 다음 주 일요일까지 하시면 됩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어요. 하지만 작가 수익화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거니 꼭 제대로 하시길 부탁드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줌을 끄고,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잠시 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조금 더 진심을 담아서 써야 한다. 도대체 그 말이 무슨 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원래 작가소개란 이렇게 조금 있어 보이게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음식을 팔면서 그 음식에 대해서 좋은 부분을 부각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소개 페이지를 어떻게 적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페이지를 작성하는 이유에 대해 잘못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비님은 내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진정성 있는 소개를 쓰라고 했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강의가 많이 들어올 수 있는 작가소개, 혹은 돈이 많이 벌릴 것 같은 작가소개를 쓰려고 노력했다! 이것부터가 서로 다른 것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휴대폰으로 내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흥부작가라는 이름 뒤에 따라오는 수식어는 많았지만 정작 내가 지금 누구인지 말해주는 글은 없었다. 책을 많이 냈다는 것도, 강의를 했다는 것도, 결과이지 내 스토리는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에는 내 수익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에디터 창을 열고 기존에 적어둔 작가소개 페이지를 삭제했다. 커서를 깜빡이는 빈 화면 앞에서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저는 매달 수입이 100만 원도 안 되는 무늬만 작가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책을 7권 냈으면 대단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아직 제 이름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시작합니다. 글을 팔아서, 콘텐츠로, 온라인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바닥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문장씩 적어나갔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신기하게도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건 내 슬픔이나 절망을 팔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쓴 글’이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이 글만큼 진짜인 글도 없었다.

글을 마치고 저장을 누른 뒤 나는 곧바로 쿠팡파트너스 사이트에 접속했다. 회원가입, 사업자등록번호 입력, 링크 만들기, 뜻밖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책 제목을 하나하나 검색하고 링크를 복사해 붙이는 일은 단순했지만 그 반복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내 책이 팔리면 이제 나는 인세를 빼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번다.”

이 작은 사실 하나가 나를 현실로 데려왔다. 나는 지금 정말 온라인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워드프레스에 책 소개 페이지를 만들었다. 책 제목, 표지, 짧은 소개글을 넣고, 그 아래에 링크를 붙였다. 대단한 디자인은 없었지만 어딘가 뿌듯했다. 이건 단순한 페이지가 아니라 내 생존의 출구였다.

업로드 누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다가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흥부, 이제 진짜 시작이다.’

“책을 냈지만 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작가 흥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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