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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Feb 10. 2020

"모유 수유해야 애들한테 좋아."보다 더 안 괜찮은 말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았다.

낳고 난 뒤 3일이 지나자 젖몸살이 시작되었다. 3일 전 내가 잘린 것은 배인가 가슴인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젖이 뭉쳐서 가슴에 돌 두 개를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찬수건을 휙 하고 올렸지만 '이 아픔을 없앨 수만 있다면.' 하고 참았다.

그런데 그 고통스러운 마사지를 끝내고 난 뒤에도 계속 가슴이 아팠다. 유축기로 짜내면 나오지 않고 손으로 짜도, 남편이 빨아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엄마가 있는 힘을 다해 짜보았더니 한두 방울 나오는 정도였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외출증을 끊고 근처에 있는 가슴 마사지샵으로 갔다. 거기서는 “언니는 치밀 유방인데 그중에서도 심한 편이네.”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수건이 휙 하고 올라간 뒤 마사지가 끝이 났다.

기적적으로 5회 정도 받자 몇 방울씩 모유가 나왔다.

이 기적을 어떻게든 애에게 먹이고 싶었다. 새벽 3시, 몇 방울 나온 모유를 모아서 신생아 병동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 과정을 일주일 했다.

가족들은 모두 내 젖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젖은 잘 나오냐.”

그렇게 모두가 궁금해했던 내 젖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오니 한 번에 양쪽 다 해서 30미리정도 나왔다.

그러면서 모유가 기분 나쁘게 뚝뚝 떨어지고 이것도 젖이라고 밤에는 짜줘야 하고 그런 상황들이 모두 싫었다. 나는 아이가 집에 온 그 주 토요일에 남편에게 울면서 말했다.

 “저 모유수유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남편은 여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그만하라고 했다. 그래서 젖이 안 나오는 마사지를 받으면서 천천히 모유를 끊었다.

초유를 먹이고 내 모유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키우며 ‘그 어떤 일보다 젖몸살이 악몽이었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뒤 8개월 만에 둘째를 가졌다.

둘째를 가지자마자 젖몸살이 걱정되었다. 또 그걸 겪을 자신이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통증이 시작되자마자 마사지를 받아야지. 미리 받는 건 가능할까.’

아무튼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날이 왔고 나는 똑같이가 아닌 첫째 때 보다 더 아픈 통증을 경험했다.

 ‘아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뒤 마사지를 수차례 받았으나 둘째는 이상하게 모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4일째 되던 날 나는 한 방울씩 나오는 모유를 보며 기뻐하지 않고 남편에게 담담히 말했다.

 “저 그냥 젖 삭히는 약 먹을래요.”

그래서 둘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젖병 수유를 했다.

수유 콜이 오면 625번 번호표를 들고 내려갔다.

젖병 수유를 하는 동안 옆에서 가슴을 꺼내놓고 수유하는 엄마들이 나에게 와서 다정스럽게 말했다.

 “분유 수유하면 뭐 어때요.”


이 말을 하루에도 열 번씩 들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정한 엄마들은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분유 수유하면 뭐 어때요.”

이게 첫마디이자 마지막 마디였다.

예쁜 신생아를 쳐다보면서 수유를 한다. 혹시나 세균이 묻을까 봐 손을 씻고 또 씻고 휴대폰도 안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뭐 어때요.’를 10번씩 듣다 보니 어느새 안 괜찮아졌다.

친정엄마 말대로 우리 둘째는 모유 한 방울 못 먹고 큰 불쌍한 애가 그래도 잘 컸으니 괜찮은 걸까.

혹시 셋째를 낳는다면 ‘모유수유’와 ‘괜찮음’ 모두 내가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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