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들의 반란
누구든 자신의 욕구를 감추면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욕구를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신체적 욕구, 정신적 욕구, 정서적 욕구, 사회적 욕구, 인정의 욕구 등 인간은 욕구의 동물인데, 우리는 왜 욕구를 감추거나 혹은 누르려고 할까?
한편, 규범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이 클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포장하고 가리려고 한다. 그런 척, 아닌 척, 괜찮은 척, 강한 척, 좋은 사람인 척, 성실한 척, 좋은 가장인 척, 좋은 아내인 척, 좋은 엄마인 척 등등의 포장하기에 익숙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
예컨대, 김유미라는 한 여성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벽한 엄마이기를 원한다.
김철수라는 남성도 완벽하진 않으나 완벽한 남편이자 가장이길 원한다. 그래서 각자가 만든 허상으로부터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어제의 김유미와 김철수는 가정의 두 축인 아내와 남편으로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하기도 하고 새로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 끙끙대기도 한다.
하지만 결혼 후, 두 사람의 삶에 양쪽 부모들까지 더해져서 6명의 삶이 실타래처럼 얽혀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그중 한 사람이라도 선을 넘게 되면 6명의 실타래는 더욱 엉켜가게 된다. 자신만 책임지며 살던 두 사람이 결혼으로 묶이는 순간 책임의 영역이 갑자기 커져 버리고 되고, 욕구를 하나씩 숨기게 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인 데도 상대방에게 배려함으로 양보하면서 자신의 욕구를 뒤로 감춘다. 혹은 상대의 욕구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방적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배우자가 참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패턴이 한 해, 두 해를 지나 10년이 훌쩍 넘어 지속된다면, 아주 쉽게 욕구를 숨기고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욕구는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부작용을 드러낸다. 쇼핑을 과하게 한다든지, 어떠한 특정 물건을 수집한다든지, 게임에 빠진다든지 혹은 술이나, 바람을 피우게 되는 등 배우자와 가정 안에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가정 밖에서 찾게 된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배우자의 이상 행동은 가장 가까이 있는 배우자들은 제일 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음을 닫아버렸거나 거리를 두고 있는 부부들의 경우일 것이다.
너무 가까웠던 관계에 이물질이 끼이게 되면 이걸 두 사람은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언어가 다른 사람 사이에 통역이 필요한 것처럼, 부부 사이를 해석해 줄 상담사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랑했던 남녀로 시작된 부부였더라도 생활 속에서 대처하는 태도에는 전혀 다른 이슈가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잔소리나 비난이 아닌 " 왜 그런 행동을 할까? 뭐가 괴로울까? 어떤 점이 힘들까?"를 궁금해하고 아주 친절하게 물어봐 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들을 하는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내면에 수많은 '나'가 존재한다. 상대나 상황에 따라서 자신도 모르는 '나'가 출현된다.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선 서로 괜찮은지, 힘든 부분이 무엇이지, 함께 처한 상황을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면서 몰랐던 자아들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함께 모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대를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궁금해해 보자. 우리는 욕구를 숨기며 가짜로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