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리즈 3
요즘 나는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애지중지 4년째 키우고 있는 매화나무에 새순이 돋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새순이 자라는 걸 보고 싶어 아침에 눈뜨자마자 매화에게 달려간다. 딸아이는 나보다 한 수 더 떠서 레몬 씨를 심었다. 레몬 씨가 싹을 틔우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린다고 하기에 모종을 사다 주겠다고 했더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씨부터 키워보겠다고 했다. 매일 정성스레 물, 햇빛, 바람을 조절해 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고 싶단다. 나는 "귀찮게 뭐 하러 그렇게 해"라고 말했다가 바로 후회했다. 딸아이가 해 보고 싶은 것은 키워진 것을 돌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싹을 틔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몇 주일을 정성스레 돌보는 것을 보니 딸아이가 레몬씨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레몬씨도 싹을 틔우려면 저렇게 정성을 들여야 하는데 인간은 말할 것도 없겠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가장 좋은 교육기관을 찾는 것이 좋은 엄마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찾은 곳에 아이를 보내놓고는 사사건건 교육시스템을 불평함으로써 좋은 엄마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아이의 일에 사사건건 나서는 것도 다반사이고 아이들 끼리의 이슈를 엄마들의 모임의 화재로 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나치게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엄마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자신을 괴롭히는 신경증 환자이거나, 남을 괴롭히는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이렇게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성장해서 엄마가 된다. 그리고 가장 가깝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자신의 감정해소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포장할 수 있기에 아주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이 격해지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처에 대해 제대로 된 공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들을 과거의 연결고리 삼아 불편한 감정을 해결해 보려는 무의식적 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인의 아이들에게는 과잉된 사랑을 주게 된다. 아이의 안전, 학습, 경제적 뒷받침, 생활의 편리성 측면에서의 사랑은 과잉이고 아이가 자신을 드러내는 감정을 보일 땐 오히려 컨트롤 하는등 일관성 없는 패턴을 보인다. 불안정한 사랑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든다.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부모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아이들을 비참하게 냉대한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신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성장한다. 그나마 신경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스스로가 힘들어할 뿐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남의 탓'만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가장 못살게 구는 성격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자기심리학의 선구자인 하인즈 코헛은 이 원인을 어린 시절 공감을 받지 못해서 생긴 '공감 결핍'으로 보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고 다양한 감정에 대한 공감을 받지 못하면 아이는 이기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성격이 형성된다. 부모가 자식을 공감해 주지 못하고 냉정하고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무슨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아이는 부모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감정의 연결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회생활이나 연애를 할 때도 상대와 감정을 연결하는 게 무엇인지를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공감의 결핍'을 인지한다면 '공감의 충족'을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지하지 못하면 주변에 공감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대상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공감 결핍인 사람은 감정을 연결해서 치유해 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을 지인이나 친구로 두어야 하는데, 결핍자들끼리 만나면 진실한 대화 없이 관계를 가지고 만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면 결핍 있는 사람들끼리는 자석처럼 더 강하게 붙는다. 왜냐하면 그들 끼리는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익숙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익숙함을 코드가 맞는 것이라 믿고 급속도로 친해진다. 하지만 그 관계는 곧 결핍에 의한 충돌을 야기하고 관계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애착을 잘 형성하지 못한 원숭이가 있었다. 상처받은 원숭이의 우리에 애착이 아주 잘 형성된 건강한 원숭이를 넣어줬다. 건강한 원숭이가 상처받은 원숭이의 감정을 함께 느껴 주자 상처받은 원숭이는 점점 변해갔다. 건강하고 안정된 원숭이와 정서적인 교감을 통해 상처받은 원숭이가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차츰 동료 원숭이들과도 건강한 관계를 맺게 된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있는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자신에게 결핍이 있음을 알고 인정한다면 처음엔 생소하더라도 건강한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해보자.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상황을 해결해 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머물러 주기만 해도 결핍은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공감을 잘 해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잘 둘러보자. 가슴 따뜻하고 건강한 사람이 반드시 주변에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둔 당신은 큰 행운을 가진 사람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