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대화는 왜 허공을 맴돌까?

자기의 개성과 가치관이 있어야할 자리에 부모의 가치관이 크게 남아있다.

by culturing me

‘다방천국'이었던 우리나라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만나면 일단 카페로 간다. 두 집 걸러 다방이었던 우리나라. 세계에서 '스타벅스'가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가 서울이라니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왜일까? 커피 한 잔 사이에 두고 이야기 나누며 마음의 갈증을 풀고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까? 카페에 앉아 있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들린다. 그것도 큰 소리로. 간혹 유쾌한 웃음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맘껏 수다를 떨다 헤어지며 한마디씩 한다. "내가 전화할게" “곧 또 만나자" “다음엔 어디서 볼까?"


그렇게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고도 또 만나길 약속하며 헤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도 관계가 깨지는 경우를 본다.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생겨야 하는데, 말 한마디에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정작 상대방 마음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만 있고, 진심으로 상대의 마음에 귀기울여 듣질 못한다. 상대가 말하려는 내용보다 내 해석이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 함께 마주 보고 앉았는데, 왜 듣질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의 개성과 가치관이 있어야할 자리에 부모의 가치관이 남아 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부모와의 정서적 분리가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경우엔 내 기준이 아닌 부모의 기준과 방식 속에서 헤엄친다. 우리나라 교육과 문화는 부모 자식 간의 끈끈한 정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기 때문에 자식의 성인으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와 대화를 하는데 그곳에 있지도 않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키워진 대로 그대로 흉내를 내며 그 기준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상대와 대화를 하는데 나는 빠지고 부모의 생각들이 오고간다. 때문에 남들과 타협하는 관계에서의 당연한 마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것이다. 자기의 정체성과 에너지가 없으므로 본인의 정신적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속빈 강정들이 겨루다 쉽게 부스러지는 수밖에.


분석심리학자 '칼융'은 이와 같이 말했다.

"청년은 살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유년기와 유년기의 부모에 대한 의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의식적 근친상간의 굴레에 몸과 영혼이 묶이고 만다."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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