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잘 알면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속지 않는다.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순간은 행복하다.
낭만적인 사랑은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인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낭만적인 사랑에 마음을 쉽게 빼앗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다. 상대를 자세히 알기도 전에 이미 반해버린 마음을 쉽게 돌려놓을 길이 없다. 이미 속임수에 넘어갔으니 귀도 막히고 눈도 멀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가장 무거운 내면의 문제를 가까운 친구나 배우자 그리고 부모, 자식에게 투사한다. 무의식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익숙한 느낌의 사람을 만나면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는데 이것도 투사이다. '이 사람은 뭔가 달라' , '이런 기분 난생처음이야' , '이건 운명이야' 이런 오그라드는 말들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현실적인 면을 보게 되면 이전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도 낯선 사람이 되고 만다. 왜 그럴까?
우리의 일반적인 관계는 의식적인 행위이다. 머리로 생각을 하며 관계를 맺어가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느 날 갑자기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사랑'을 할 때는 '의식' 보다 '무의식'이 먼저 작동한다. 즉, 어떤 상대를 통해서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감정이나 이미지 등의 요소가 자극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아니마 (남성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여성에 대한 감정이나 이미지) 혹은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남성에 대한 감정이나 이미지)라고도 한다. '첫눈에 반한 대상'과 충분한 시간과 대화를 통해 알아가기도 전에 이미 상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답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연인이 되고 결혼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부터 100점으로 출발을 했으니 점수는 내려갈 일 밖에 안 남았다. 상대에게 자신이 원했던 이미지의 대상이 되어주기를 요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의 실망감은 커지게 된다. 서로가 이어져 있다고 (connected) 착각했던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끊어지는 (disconnected) 경험을 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은 큰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뇌의 '속임수'이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이 현실에서 발현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대서 오는 아픔인 것이다. 결국은, 당신이 만난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의 착각이 나를 속였을 뿐이다. 여기서 대중문화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확률이 낮은 일을 드라마에서는 이루어준다.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만져주는 대중문화가 아픈 현실을 공감해주니 문화(드라마)의 역할이 클 때도 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나?
오히려 착각에서 벗어난 후 '0'에서 시작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 볼 수가 있다. 서로의 단점과 차이점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신뢰와 믿음을 쌓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랑은 키워볼 만하다. 애정관계의 진실은 나 자신이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상대도 잘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