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리즈 4
몸의 익숙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면 살이 찌듯이 감정도 익숙한 감정만 사용하면 병이 난다. 하지만 사람이란 익숙한 것을 먼저 사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기획 단계의 미팅에서 누군가 새로운 콘셉트를 내놓으면 익숙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초반부터 "이런 건 성공사례나 매뉴얼이 없어서 힘들 것 같은데요? 그냥 하던 대로 하시죠?"라거나 “에이~ 이건 익숙한 콘셉트가 아니라 사람들을 이해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란 이견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익숙해진 박스를 벗어나 생각하면 (out-of-box thinking) 더 경쟁력 있는 가능성들이 보이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하게 된다.
마음치료의 기본은 자기감정을 바로 알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늘 사용하는 익숙한 감정 언어만을 표현하며 살아간다. 잘 사용하지 않던 감정은 생소해서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만 잘 다뤄도 세상살이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굳건히 견뎌낼 만하다. 적어도 가슴의 답답함은 풀어질 수 있다.
그런데 설명으로는 2프로 부족한 게 감정 설명이다. 왜냐하면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느껴야 하는 걸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뭉뚱그려진 감정을 느껴보라고 하니 마음공부엔 진전이 없다. 언어로 표현해 보지 않아 그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글을 읽은들 변화될 수 있을까? 이는 분명 시간 낭비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 유난히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위해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고 싶다.
감정은 에너지이다.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종류가 몇십 가지인데 그들을 다 사용하지 못한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냉장고에 맛있는 산해진미를 꽉 채워놓고 뭔지 몰라서 익숙한 콩나물이랑 김치만 꺼내 먹는 형국이랄까?
북한산 등산길을 상상해 보며 아래 글을 함께 읽으며 감정을 느껴보자.
[날 좋은 봄날 등산으로 콧바람을 쏘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어느 코스로 올라갈까 고민을 하는 것마저 즐겁다. 하지만 혼자 갈 생각을 하니 조금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기분전환도 할 겸 운동을 하는 것이니 흐뭇하다. 이미 길을 알고 있는 평창동 길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봄바람이 포근하다. 북한산 초입에 다다르자 흙냄새가 코 끝을 찌르고 이내 마음마저 상쾌해진다. 하지만 족두리봉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니 바위로 만들어진 산이 무시무시해서 긴장된다. 그런데 근사한 등산화를 신고 뚜벅뚜벅 겁 없이 오르는 앞사람을 보니 왠지 주눅이 들었다. 내 워킹슈즈로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암담했지만 그래도 나의 용기가 자랑스럽다. 혼자 산에 오를 생각에 조금은 두려웠었는데 산행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있으니 안심된다.]
산을 오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산의 초입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등장했나? 16개의 감정이다. 사실 글이 아니라면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더 디테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세한 이름이 있는 감정을 우리는 그냥 좋다. 싫다. 힘들다. 짜증 난다. 화난다. 정도로 표현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 몸이 느끼는 감정을 잘 알고 이름을 불러준다면 우리의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매다 이성 잃고 폭발하거나 냉정하게 돌아서 입을 다무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단호하고 점잖게 자기의 감정을 잘 표현하니 굳이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싸움을 걸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앞에서 말했듯 감정은 에너지라고 했다. 사람마다 쓰는 감정 에너지가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주로 쓰는 감정 에너지가 어떤 종류인지를 알면 자신을 훨씬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고, 기울어지는 에너지의 밸런스도 맞춰줄 수 있다.
감정은 크게 기쁨/애정 - 슬픔/근심 - 분노/두려움의 세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건강한 사람은 세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수십 가지의 감정을 골고루 잘 느끼고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한쪽 카테고리의 감정으로 치우쳐져 있다면 잘 쓰지 않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 느끼도록 해야 한다. 처음엔 평소에 잘 느끼지 않던 감정이기에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해보자. 다양한 감정이 느껴지는 걸 알아차리고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인간의 에너지인 감정을 이성으로 판단하며 제어하지 말고 적절한 상황에 잘 표현해보자.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는 지도자라 해도 감정을 다루지 못해 수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매일 접한다. 감정 에너지를 원활히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