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마음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다람쥐를 보며 부러워하는 코끼리 한 마리가 있었다.
코끼리의 꿈은 나무에 오르는 것이다. 튼튼한 네 발로 푸르른 들판을 활보할 수 있음에도 자기가 코끼리임을 망각하고 나무에 오르고 싶어도 못 오르는 자신을 자책한다. 코끼리는 자기가 다람쥐인 줄 착각하고 있다. 이를 본 다람쥐는 코끼리를 위로해 준다.
" 코끼리야 코끼리야 너의 멋진 모습을 좀 봐. 튼튼한 두 다리로 어디든 갈 수 있고, 긴 코로 뭐든 만져보고 느낄 수 있어."
슬로베니아 작가의 드로잉을 감상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간단히 붙여봤다.
자기가 만든 이상 혹은 과거에 경험한 기억에서 나오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은 이상에 사로잡히거나 혹은 어제의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몸만 오늘에 살고 있는 듯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모습을 본인만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을 찾아 여행도 많이 하고 최신 유행의 패션과 트렌드에 젖어 있지만 마음이 현재로 넘어오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나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식으로 무장된 언변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더라도 속 사람은 과거에 머물러 있음이 행간에서 묻어난다. 30대까지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40대가 지나서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함께하는 주변 사람 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과거를 놓지 못한다는 것은 현재도 놓친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무슨 소리야? 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데?"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현재를 과거의 마인드로 살고 있다는 것은 현재라는 시간 위에 떠있을 뿐 현재 만나는 사람들 혹은 상황 속에서 즐거움이나 존재의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과거의 실수나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에 머물며 과거의 문제를 현재로 연장해서 해결해 보려고 매 순간 노력 중일 확률이 높다. 그들에게는 괴로운 과거가 자기의 자리일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결되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심 혹은 아쉬움에 묶여 자신을 이상화시키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과 자신의 상황도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철없는 행동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영어로 "let go", "move on" 같은 표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회한이 담겨있을 것이다. 지금은 찾기 힘든 '두더지'라는 오락 게임이 있었다.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두더지들의 머리를 망치로 두드리는 게임인데 아무리 망치로 두드려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두더지들이 마치 인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상흔들 같다.
현재를 즐기며 살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는 내 과거의 '두더지'는 무엇일까? 과거에 빼앗긴 오늘의 행복을 찾는 것이 말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잊어버린 지 오랠수록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고군분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내 마음의 평온을 빼앗겨야 할 만큼 중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한순간 불안이 자신을 삼켜버리게 두었다면 그 순간 당신은 그 불안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만이라도 온전히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산다면 남은 시간 모두가 내 것이 되지 않을까? 오늘만이 나의 것이다.
(Ana Zavadlav 2017 / Slove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