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기준은 어디에
어릴 적 '토끼와 거북이' 동화책을 보다가 이야기의 전개보다 "거북이의 등은 참 무겁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기보다 거북이 등의 무게가 걱정이 돼서 거북이가 나무그늘 아래서 오랫동안 쉬길 바랐었던 것 같다. 어느새 40년이 지난 후 나의 모습에서 그때의 거북이처럼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문득, 왜 내가 거북이 등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지? 이 일도 하고, 또 저런 시도도 하며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또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가장 궁극적인 뿌리는 '돈'이었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나도 어쩔 수 없이 돈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 거구나!.' 인간은 원초적으로 창의성이 발현될 때 행복감을 느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창의성이라 하면 돈을 벌기 위해서 결과물을 내기 위한 창작활동이 아닌 돈과는 연관이 없는 자기 에너지 창조활동을 말한다. 내가 요즘 바쁜 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돈벌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 쓰는 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일탈하고 있는 것도 나를 위한 에너지 창조활동이므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독서, 그림 그리기, 노래, 악기 연주, 산책, 숙면, 호흡하기,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등 이 모두가 건강한 에너지 생성을 위한 자기 창조활동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기본 생계를 해결하기에 바빠서 에너지 창조에 할애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감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자기 에너지 창조에 써야 할 에너지를 모조리 돈 버는 일과 성취를 위해 쓰고 있다. 자기 에너지 창조를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현대인은 지쳐가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순리대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서 불안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려 점점 더 세상적인 것을 가지려고만 한다. 현대인을 지배하는 '돈과 성취욕' - 도대체 얼마나 소유해야 만족할까? 돈의 목적을 자본증식을 목표로 한다면 이는 멈추기 어려울 것이다. 계속 증식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멈추겠는가? 돈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 의미를 잃은 현대인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돈이 삶의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민족은 돈을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썼던 민족이다. 돈을 사람 위에 두지 않았다. 나누고, 보살피고, 품어주는. 인정이 우선시 되는 민족.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돈을 가치있게 썼던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같이 큰 사람들이 많지 않은듯하다. 돈에도 인간의 삶처럼 희로애락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호흡하며 유구한 역사를 만들어낸 휼룡한 민족이다. 어느 민족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산도 사람을 보호하고, 기운을 나눠 준다. 이런 멋진 나라의 휼룡한 민족성은 어느새 현대사회를 살며 부동산 투자 등에 휩쓸려 돈을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심지어 인간에게 쉼을 주는 산도 밀어버리고, 나무도 베어버리는데 사람을 뭐 그리 중요하게 여기겠는가.
같은 민족인데, 뭐가 달라진 걸까? 심지어 우리는 과거보다도 더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이는 전쟁 이후 뒤바뀐 가치기준 때문이다. 자기 에너지 창조보다 성취와 돈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삶의 소소한 자기 문화가 단절되고 남의 기준을 따라 살다 보니, 스스로 창조된 자기 에너지 없이, 돈과 성취감으로 아무리 채워봐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사람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뿌리를 지지대 삼아, 돈을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쓴다면 거북이 등처럼 무겁게 짐을 지지 않고도, 인복으로 스며들어 인품 있는 삶이 만들어질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가치 있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돈은 점점 사라지고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만연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살 수는 없고, 오히려 그들이 후대에 물려주는 것은 탐욕과 무지가 아닐까? 결국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거북이 등 신세인 현대인.
하늘과 땅의 보호를 받는 멋진 민족이여, 삶의 수단일 뿐인 돈 앞에서 비굴해 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