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카피가 아닌 자신만의 역사이다.
자기 취향이 없는 라이프 스타일은 매력없다.
하지만 최근 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시대의 취향이였던 도심 곳곳의 역사적 흔적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채 오래된 것은 낡은 것으로만 취급했었다. 심지어 그 자리를 해외 카피로 채워 넣기도 했고, 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참으로 아타까운 일이지만, 각자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나와는 인식의 관점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여기저기에 정들었던 것들이 사라져 갈때마다 그저 혼잣말을 되뇌이게 되었다. 아..... 울고싶다.
하지만, 공중전화박스, 오래된 낡은 건축물,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과 간판, 붉은 벽돌집, 오래된 집의 서까래 등 낡은 것은 못 쓰는 것으로 여겨져 없어지고, 버려지고 '트렌드'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정말 아쉽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한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역사와 철학이 있고 세월을 부단히 견뎌낸 흔적에서 매력을 찾으려 한다면, 오래되고 낡은 것들을 다시 살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트렌디’하다는 말이 일상화되면서 이것은 패션, 문화, 예술, 건축, 디자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해외의 '트렌드'에 대해 ‘fast follower'가 되는 것을 의미하곤 했다. 트렌드를 따라야만 앞서는 거라 생각하고 문화, 예술, 디자인 분야의 선두주자들이 앞다투어 '트렌드'를 외쳤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과거를 무시한 채 유명세의 화려함에 매혹되는 ‘따라 하기 문화’만 성행한 건 아닐까?
근대 이전 우리 문화유산과 라이프 스타일은 매우 우아하고 섬세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문화기반이 파괴되고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문화를 향유할 여건이 부족했다. 가난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 문화는 사치였고 외국 것이 우리 것보다 좋다는 사고방식이 내면에 깔려 있었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신토불이’ 신드롬이 일면서 우리의 문화와 뿌리를 찾는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우리의 과거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조건 부수고 밀어버린 다음 높이 올렸던 ‘개발 제일주의’적 발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담겨있는 도시의 원형을 유지하려는 경향도 생겨났다. ‘성북동 북정마을’, ‘익선동’, ‘돈의문 박물관 마을’ 프로젝트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다. 지금이라도 잊지 않고 되찾아 가려는 숨은 노력에 감사한다. 본인이 사는 집은 재계발이 들어갈 뻔 한, 지은 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빌라이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편리한 새 아파트를 뒤로한 채 옛 정서가 풍기는 정취와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리게 하는 빨간 벽돌, 세월 속에 거목이 되어버린 소나무들 그리고 서까래에 반해 엘리베이터가 없음에도 이곳으로 이사와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리모델링을 하며 최신의 인테리어 자재를 동원해서 ‘트렌드’를 입히기보다는, 집 곳곳에 존재하는 ‘세월’을 되살리는데 초점을 두었다. 도면을 직접 그리고, 나무 향을 풍기는 살아있는 서까래, 1970년대 스타일 문짝, 통나무 계단, 격자 창문, 30년 된 벽난로도 그대로 살렸다. 철거에서 바닥 공사를 마무리하며 집의 히스토리에 ‘오래된 것’을 재탄생시키는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 철학이 입혀지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우리집은 화려하고 얼른 눈에 띄는 최신식 모던한 집이 아니다. 하지만 투박해도 깊이와 스토리가 있는 것이 좋다. 디자인적으로 다소 부족해도 한 시대의 숨결과 문화의 흔적을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동네마다 집집마다 복제품 투성이에 비슷한 리빙용품으로 집을 채우고 사는 것보다 가족과의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오브제로 집을 꾸미면서 집과 소품을 통해 과거와 만나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취향을 찾으려면 삶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된다. 할머니가 입으시던 옷, 엄마가 즐기던 액세서리, 그릇, 이불 패턴, 아빠가 즐겨 읽던 책 혹은 쓰던 만년필 등을 머릿속으로 훑다 보면 그곳으로부터 나의 취향의 연결 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뿌리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자신만의 풍요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잡지에서 여배우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설명하며 "유럽산 커피잔에 마시는 커피와 딥티크 향 초로 하루를 시작해요"라고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취향을 고민하지 않으면 가볍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청담동 백화점 안에서 찾는다. 그건 남이 갖다 놓은 물건을 돈 주고 사는 것이지 자신만의 철학에서 탄생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은 무엇일까? 즐거운 고민을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