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라도 자유롭게 자기 춤을 춰보자.
문화만큼 변화되기 힘든 게 있을까? 런던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수준 높은 거리의 악사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재능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그들의 재능에 도네이션 하는 게 그들의 문화이다. 참으로 노블한 기분 좋은 문화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서 신나게 꼭두각시 인형놀이를 하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현란한 손놀림으로 줄에 매달린 인형을 움직이니 인형의 두 팔과 다리는 리듬을 타며 춤을 추었다. 리듬을 타는 인형놀이에 구경꾼들은 흥이 나고 인형을 다루는 그녀도 신이 나 보였다. 나는 문득, 생명력 없이 흐느적거리는 인형이 끈에서 풀려나와 스스로의 춤을 추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새로운 시도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어린 시절의 가정이나 환경의 경직된 문화가 강하게 몸에 배어 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에 의해 삶이 크게 좌우된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뭔가 뒤에서 "하지 마 ~, 가지 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살아~" 같은 무언의 메시지가 행동을 좌우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처럼 몸이 기억하는 습관은 참 고치기가 어렵다. 불을 켜는 습관,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습관,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습관, 말투, 밥 먹는 습관 등 일상생활의 습관도 평생 따라다니지만 생각의 체계가 형성되는 시기에 들어온 습관은 바뀌기가 쉽지 않다. 어른이 되어 있음에도 어릴 때부터의 습관은 좀처럼 나를 떠나지도 않을뿐더러 스스로도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못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왜 꼭 바꾸려 할까?
생각의 뿌리는 부모로 인해 심어져서 교육에 의해서 자라는데 여기서 더 고질적인 것은 환경으로부터 스며들어온 문화적 사고이다. 문화란 이슬비와 같아서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흠뻑 젖어 버리는 게 문화이다. 특히 지각과 사고체계가 완성되는 청소년기 이전에 터득된 것들은 정말 바뀌기 쉽지 않다. 그 기본 위에 더해질 순 있어도 바뀌지 않는 뿌리처럼 고질적으로 질긴 것이 문화적 사고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바꾸려고 할수록 더 꼬인다. 분명 모두가 다 아는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자들이 몰라서? 아니다. 현실을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해 더 좋게 개선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더 악화되어간다. 그 이유는 문화의 뿌리를 어떤 정책이나 제도로 단시간 내에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험난한 역사에 의해 형성된 문화를 무슨 수로 바꿀 것이며 매번 개혁을 한다고 한들 개혁이 되기엔 유구한 세월 동안 형성된 문화의 뿌리가 이미 깊을 대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기대효과는 아마도 정책을 마련한 사람들의 기대 시간보다 두 배 세배 아니면 그 이상이 걸릴 것이다. 외국의 이질적인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현지 문화를 이방인의 자세로 느끼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불안을 느끼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신이 난다는 것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혹은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이 외부의 자극에 인해 건드려졌을 때 터져 나오는 기쁨이다. 외부의 자극을 받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긍정적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으로 갈릴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자라면서 체득한 문화적 배경에 의한 차이이다. 어렸을 때 긍정적인 문화를 많이 경험한 경우엔 상황 변화에 대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문화를 경험한 DNA 가 있고, 이것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습관에 의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나 부동산 제도가 고치고 규제를 더해갈수록 더 상황이 악화되는 이유는 가장 예민한 문제를 건드리니 방어하려는 심리가 즉각적으로 발동하기 때문이다. 내 집 소유와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은 우리의 민족적 문화 (집단 무의식)이고 아직도 깊이 존재한다. 그러니 교육과 부동산 제도를 극단적으로 바꿀 때마다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땅과 교육이 전부였던 민족의 정서를 외면한 채 선진국 제도를 접목시키려 한다면 단시간에 개선되기도 힘들뿐더러 개선은커녕 문제가 더 복잡다단해질 수 있다.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역사와 문화배경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간다. 가난이나 무지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조상들의 손에 달려있던 꼭두각시 인형이 우리 부모이고 우리였을 것이다. 맹목적 비판이나 근시안적인 처방이 아니라 문화역사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 올바른 자리를 찾아가는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꼭두각시였다면 어떤가? 이제부터라도 자기 춤을 추려는 시도를 한다면 언젠간 자기의 몸과 마음에 어울리는 자기 춤을 추며 살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