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아이를 엄마들은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가 무능한 어른으로 자라는 건 누구도 원치 않는다. 아이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무능한 아이를 만드는 엄마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의존 감이다. '나는 네가 필요하니까 너도 나를 필요로 해줘' -- 이 마음에는 자식이 자기로부터 독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다. '넌 나 없이 잘 살면 안 돼. 그러면 내 (존재)가 없어지잖아' -- 이는 자아 소멸의 두려움을 동반한 불안이자 삶을 자식에게 매어두는 스스로에 대한 억압이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프리데 예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라는 소설이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성장과정에 바탕을 둔 소설로, 강하게 집착하고 간섭하는 어머니로 인해 감정과 행동을 억압당하고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내용은 실험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실제로 심리적으로 과하게 밀착되어 있는 동반 의존 관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가 있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관계에 있어서 가장 심한 '질식사고'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동반 의존이다.
위 소설에서 모녀는 노인과 중년이 되어서도 함께 살고 있다. 노모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아야 하고, 사적 일상과 공간을 경계 없이 마구 드나든다. 주인공인 딸 또한 모든 문제의 첫 반응이 "엄마는 내가 알아서 할게" 혹은 "엄마한테 말하지 마"이다. 마치 엄마는 자기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말로 비치지만,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엄마를 늘 의식하는 삶의 묘사이다. 모든 상황의 중심엔 엄마가 있다. 주인공의 삶에 자기는 없고, 엄마가 원하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만이 있다.
겉보기엔 열정적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엄마처럼 보이지만, 딸 옆에 남자 친구라도 생겨 자기의 자리가 없어질까 봐 촉을 세우고 집착한다. '조금만 더 무능해져 줄래? 그래야 내가 할 일이 있지...'. 엄마의 억압에 숨 막히는 딸은 친구들과 희희낙락 놀거나 오히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막힌 감정이 뚫릴 텐데 그저 엄마의 눈을 피해 입지도 않을 옷 쇼핑을 하거나 자해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일시적으로 해소한다.
"엄마한테 물어볼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 마음을 왜 엄마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물어봐 줘야 한다. 의외로 멍하니 대답을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왜냐하면 엄마의 생각을 따르며 살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도움을 줘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독립하도록 뒷짐을 지고 내버려 둬야 할 때도 있다. 시기에 맞게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지 않으면 부모의 존재는 독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어떤 부모인지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부모들은 그 문제를 자기만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므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본인과 자녀와의 관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