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이엄마 김영숙씨 되다

익숙한 레이블(label) 벗어나 보기

by culturing me

나라와 지역을 옮겨가며 '한 달 살기'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큰 유행이다. '살아보기'는 단기여행과는 다른 경험하게 한다. 익숙해져 버린 환경과 습관에서 벗어나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익숙한 옷이 편할지는 몰라도 새로운 기분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여행자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을 잠시나마 삶의 터전으로 받아들인다면 굳어진 습관도 조금씩 풀어지고 재 튜닝될 수 있다. 주말이면 집에서 뒹굴 거리던 버릇도 새로운 곳으로 환경이 바뀌면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낯선 것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또,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던 습관도 혼자 마주해야 할 상황으로 바뀌면 숨어있던 능력이 발휘되어 척척 난관을 헤쳐나간다.


지금 나는 해외에서 몇 달 살아보기 중이다. 물론 지금 이 시간은 나라만 떠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23년의 결혼생활과 16년의 엄마 역할에서 ‘단기 면제’된 경우이다. 마른 딱지가 떨어지듯 아주 자연스럽게 툭 독립되고 나니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간 것 마냥 20대 때의 에너지와 열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일단 부양가족이 없으니 스케줄이 자유롭고, 엄마나 아내라는 타이틀을 떨쳐내도 되니까 옷부터 캐주얼 해졌다. 변화의 첫 시도는 20대 때 즐기던 문화로 돌아가기였다. 잊고 살던 콘서트와 라이브 음악을 들으려 공연 티켓을 찾아보는가 하면 철퍼덕 바닥에 앉아 거리음악을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시간과 정신적으로 가장 여유로울 때 문화를 통해 느끼는 향수는 단숨에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강렬한 힐링이었다. 나의 에너지를 누군가와 나누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다 보니 저절로 행동과 모습이 자연스러워졌다. 옆에서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없으니 내 맘대로 계획했다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또 그 엉망인 상황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더 나아가기도 한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남편 또한 몸은 자유로워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인해 마음은 자유롭지 못했을 지난 시간을 뒤로한 채 우리 둘이 만들어 놓았던 부부라는 레이블(label)이 붙은 항아리를 열고 나오고 있다. 레이블의 힘은 의외로 강력하다. 이름을 짓고 레이블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의 노예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게 고정된 레이블에서 잠시 벗어나면 인간의 다른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정체된 성장이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보며 성장 중이다. 그의 성장도 나의 성장 못지않게 보기 좋다.


살다 보면 힘든 시기를 만난다. 하지만 힘든 시기일수록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심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일을 그만두거나, 뭔가를 정리해 버리거나, 헤어지거나, 서로 미워하고 관계를 끊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 환경을 바꾸고 거리를 두는 것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나라마다 시간대가 달라지듯 부부도 서로가 살아가는 시간대가 다를 것이다. 서로가 이를 존중해 준다면 더욱 성숙하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부부뿐 아니라 모든 관계는 안전거리의 유지가 관계의 건강함을 결정하는 것 같다. 거리를 둘 수록 넓게 보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얼마큼 자랄지 몰라 묘목을 가까이 심을수록 서로의 뿌리는 엉키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늘을 만들어 성장을 가로막는다. 사람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무 사이의 거리가 중요한 만큼 사람과의 관계에도 거리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럴 때 가능하다면 환경을 바꿔 새로운 장소에서 혼자 살아보기를 시도해 보자. 기대치 않게 인생의 큰 가치를 알려주는 최고의 투자가 되리라 믿는다.

keyword
이전 02화엄마한테 물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