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을 먼저 바라보기 때문
우연히 보게 된 예능프로그램 때문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의뢰한 부모와 감초 역할을 하는 패널 몇 사람 그리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가 등장해서 가정 내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함께 모여 앉아 의뢰인의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며 그들의 마음을 읽고 느낀다.
TV 프로그램에 자신의 얼굴을 내밀고 자녀 문제를 의뢰하기가 쉬운 결정은 아닐 것 같다. 그만큼 자녀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많았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촬영한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이없게도 어떻게 저렇게 아이의 마음을 모를까? 하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모에게 바라는 건 오로지 '내 마음 좀 알아주세요'이 다. 조금만 유심히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게 아이의 마음이련만 부모는 일상의 분주함 때문에 그 걸 놓치고 만다. 참 슬픈 일이다.
나도 딸아이를 키우며 정성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아이의 마음을 수없이 놓쳤을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보며 어떤 드라마를 볼 때 보다 많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너무도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은 참으로 말랑말랑해서 부모의 작은 반응에도 꽃을 피우는가 하면 사소한 무관심에도 상처를 깊이 받아 이상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부모든 아이들을 위해 열심을 다한다. 하지만 자녀들의 핵심감정을 놓쳤다면 아무리 열심을 다해도 힘만 들뿐 개선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의 족집게 공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부모 스스로가 공감했다고 생각해도 매듭이 풀리지 않고 있다면 아마도 진정한 공감이기보다는 그저 아이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거나 칭찬을 남발하며 차분히 대해주는 것이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족집게 공감과 함께 적절한 반응만 잘해줘도 아이들의 마음은 빠른 시간 내에 살아나고 밝은 웃음을 되찾아 자기의 모습대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면 공감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아이들이 하는 행동에만 집중해서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하지 말고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잘할 줄 모르기 때문에 마음을 거꾸로 표현하기도 하고, 이상 행동으로 부모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그럴 때 " 넌 왜 그러니?" , "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가 아니라 따뜻한 스킨십과 함께 "00야, 지금 마음이 좀 불편해?"를 해 줘 보자. 감수성이 풍부해 감정을 잘 타는 사람이 공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감정 속에만 파묻혀 있다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그야말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집중에 의한 마음이다.
아이를 대할 때 부모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부모가 상황에 놀라 더 흥분을 하면 오히려 아이들은 아예 마음을 감춰 버린다. 흥분한 부모를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예를 들어, 아이를 멀리 떠나보낼 때 부모가 슬픔에 젖어 눈물을 보이면 아이들은 부모를 달래느라 부모품에 안겨 실컷 울지 못한다.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안색을 살피기 때문에 먼저 참는다. 하지만 그 참는 마음이 적절히 해소를 못하고 쌓인다면 삐뚤진 언행으로 발현된다.
또 다른 예로, 아이가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왜 싸웠니?"라고 다짜고짜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면 아이는 흥분한 엄마의 표정을 바꿔보기 위해 변명과 핑계 그리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 네가 싸운 데는 이유가 있었겠지. 뭐가 그렇게 화가 났었니?"라고 존재를 먼저 인정해 주고 화난 감정을 이해하고 물어봐 줘야 한다. 억울했던 마음을 부모가 먼저 이해해 준다면 인정받는 존재가 된 아이는 속사포처럼 자기의 감정을 부모에게 서스름없이 털어놓을 수 있게 될뿐더러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을 할 여유가 생긴다.
부모에게 존재를 인정받은 아이는 비뚤어지라고 해도 비뚤어질 수가 없다. 부모의 족집게 공감은 참으로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