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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Mar 19. 2021

에드워드 양의 20세기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오늘 밤엔 넷플릭스-3월 3주]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리뷰

샤오쓰(장첸) 혼란스럽다. 성적이 떨어지자 학교는 샤오쓰의 반을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옮긴다. 샤오쓰는 모범생도, 불량배도 아니었지만 그의 주변은 어느새 패싸움을 일삼는 청소년 폭력배들로 채워진다. 어쩌다 마주쳐 연모를 품게  (양정이) 하필 조직 두목의 연인이다. 학교선생들은 윽박지르고 우정은 덜컹거리고 사랑은 엇나간다. 불길하고 음험한 기운이 모든 것을 삼킬듯한 곳에서 샤오쓰는 한줄기 빛을 찾기 위해 도시를 기웃거린다.


송경원 영화평론가는 에드워드 양의 다른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1985)를 두고 "영화가 시대와 공간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것을 증명"(씨네플레이)했다고 평한 적이 있다. 이는 기실 에드워드 양의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특기할 사실은 이 작품이 감독의 유일한 시대극이라는 점이다. 에드워드 양의 다른 영화가 20세기 말엽 도시의 적막과 공허, 불안 등을 재현했다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1960년대 대만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정적인 필치로 그려낸다. 잠깐, '혼란(混亂)'을 '정(靜)'적으로 표현했다고? 놀랍게도 사실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암전을 활용해 혼란과 고요함이라는 상충적 요소를 작품에 녹여낸다. 저 멀리 가로등빛이나 어스름한 월광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줄곧 제한된 시야를 형성한다. 낮은 명도가 내리깔린 배경은 영화의 화폭을 더없이 차분하게 만든다. 이러한 희미한 밝기는 샤오쓰를 닮았다. 전깃불이 나간 공간에 엷게 스며드는 빛은 먼발치 광원에서 길을 잃고 찾아온 손님이다. 샤오쓰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스스로 목적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배회한다. 또래 중학생들이 가득한 학교, 촬영이 한창인 스튜디오, 로큰롤이 울려 퍼지는 공연장, 샤오쓰는그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어둑한 경계를 표류한다.

이미지 출처: TMDB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개인이 빛을 찾는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혼탁한 면을 기록한 시대물이기도 하다.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타이완 섬이 중화민국에 반환되고 이후 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면서 대륙인들이 대거 타이완 섬으로 이주한다. 1949년, 국민당 정권은 타이완섬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이 풀리지 않고 철권통치가 이어지던 1960년대, 14살 소년 샤오쓰가 타이베이로 이사오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에는 기본적으로 샤오쓰의 나이만큼, 아니 어쩌면 더 오랜 기간 누적되었을 당대의 불안이 한껏 묻어있다. 원주민과 이주민, 학교와 학생, 부모와 자식, 조직 세력 대 세력 사이사이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갈등의 염초가 무성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관람의 한가지 문턱은 4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이다. 237분을 한 영화에 바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긴 러닝타임을 서사적 재미와 에드워드 양 특유의 미감,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로 가득 채운다. 이는 237분의 당위성을 초월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에드워드 양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두터운 영화사 목록 중 이 영화에 특별한 보람줄을 매달아 놓고 싶다.

이미지 출처: TMDB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장첸, 양정의, 장국주 등

장르: 드라마, 시대물

수상: 38회(1991)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작품상, 28회(1991) 금마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이용가능플랫폼: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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