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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Feb 18. 2024

과거의 적이 미래의 내가 된다

관용을 가져야 하는 이유



2021년쯤인가 전 회사에서 이사님 한 분이 '태니지먼트 검사'라는 것을 권유해서 해 본 적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성향이나 욕구를 분석하여 직무 강점을 찾아주는 검사이다. (유로 서비스이지만 한 번쯤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때 나왔던 결과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관용'이나 '긍정' 부분이 남들 평균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고 나온 것이다. 특히 '관용'은 거의 바닥에 그래프가 딱 달라붙은 것이 거의 0점으로 측정된 것 같았다. 당시 업무적으로 나랑 의견이 다른 일부 동료들을 이해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면전에서 티를 내거나 업무에 협조를 하지 않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인가 싶긴 했다. 그러다 그 와중에 '배려' 항목은 평균 이상으로 나온 것을 보고 그 차이를 깨달았다. 나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기 위해 '받아들이는 척' 했을 뿐, 진정으로 그 상대방을 받아들이거나 허용한 적이 없었음을 말이다.


이때의 나에서 지금 2024년의 내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해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하는 의문이 튀어나온다. 특히 팀 대 팀으로 부딪히는 상황이 오면 이런 마음이 더 심해진다. 우리 팀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애틋함과 소속감이 과하게 발현되어, 늘 우리 팀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옳은 판단만 내린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 팀과 목표도, 가치관도, 업무 스타일도 다른 타 팀은 어느새 '빌런'이 되고, 나에겐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보다는 어서 그들에게 죄명을 주고 단죄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해진다.








23년 가을쯤인가 품질팀과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BM으로써 신제품 개발 중 식품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copy 문구에 대한 자문을 구했는데, 다음날 나랑 우리 실장님, 그리고 타 팀 사원을 수신으로 해서 품질팀장이 답장을 보낸 것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해당 메일의 내용을 본 우리는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그곳엔 왜 여기저기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계속하냐며 화내는 내용과 우리 실장님에게 직원 교육을 잘 시키라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로선 정말 억울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우선 타 팀 사원과 나는 다른 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각각 어떤 내용을 질문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잘 들여다보면 비슷한 내용일 뿐 완전히 같은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해당 내용이 가이드처럼 배포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민감한 사항에 대해 품질팀에 자문을 일일이 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물어보지 말라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일 어처구니없는 것은, 우리 팀에서 두 명이 보낸 것도 아닌데 타 팀 사원이 보낸 것까지 문제 삼아 우리 실장님께 항의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 실장님이 그 팀장보다 상급자였다. 이 분은 대체 팀 구조를 제대로 알 긴 하시는 건 지 의문이 들었다.


물론 해당 메일은 절대적으로 품질팀장의 몰이해와 감정적인 대처로 인한 일방적 잘못이었으므로, 그 팀장이 대표님께 깨지고 우리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품질팀장에 대한 절대적 불신이 생겨버렸다. 아무리 짜증이 난들 회사 생활도 할 만큼 한 사람이 저런 메일을 보낸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고, NF적 상상력으로 아마 은연중에 그전부터 우리 팀을 무시했기 때문에 상급자한테까지 저러는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도 내렸다. 그 이후 품질팀에서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제대로 협조해주지 않으면 곧바로 화가 났다. 그리고 그때 해소되지 않은 억울함을 그 상황에서 같이 풀곤 했다.


"저희도 한 마디 해야 하지 않아요? 우리 팀에겐 잘못하지도 않은 것으로 그런 메일을 보내더니, 본인들은 매번 실수해도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


하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훨씬 성숙한 팀원들은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그들을 이해해주곤 했다. 사실 나도 메일 사건과 품질팀의 각각의 잘못들은 다 별개이고, 그때 일로 지금 더 화내야 한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품질팀장에게 메일사건으로 받은 상처가 아직 컸고, 마음속 한편에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그들의 시점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었던 사건이 생겼다. 영업에서 급하게 요청한 PB상품 진행 중에, 이제 제품 표시사항 작업 중인데 계속 생산 일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오는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생산 일정을 잡으려면 적어도 부자재 입고 일정부터 나와야 하는데, 아직 표시사항 작업 중이라 부자재 발주도 안 한 상태에서 생산 일정부터 달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 구두로 물어보시기에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또 메일로 똑같은 요청을 말씀하시기에 그날 쌓아왔던 예민함이 폭발했던 것 같다. 너무 짜증이 나서 제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나보다 한참 상급자인 차장님께도,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차갑게 응수해버리고 말았다.


실장님께 이후 이 일을 보고 드리면서 영업의 요청이 너무 화가 났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실장님이 그런 내게 그러시는 거였다. 어쩌면 품질팀도 그동안 우리의 요청을 이렇게 받아들였을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씀에 아차하고 이런저런 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이 갑자기 식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일과 지금 일은 다르더라도, BM으로서 충분히 양쪽 입장이 다 되어볼 수 있었던 건데 어쩌면 내가 참 다른 팀에 대해 '내로남불'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여전히 우리 팀의 착한 실장님과 동료들처럼 남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관용'이 부족하다. 나는 이후로도 계속 이기적이고 우리 팀 편만 들 것 같다.


그래도 이젠 뭔가에 정말 미치도록 화가 날 것 같다면, 가끔은 한 발짝 떨어져서 마음을 식히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남들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해서가 아니라, 먼저 발끈했다가 추후 '내로남불'로 부끄러워지는 일은 경험하기 싫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 실수가 나에게 당장은 민폐를 끼치고 나에게 상처를 줘서 화가 날 지라도, 그 마음을 계속 가지고 그 사람을 미워했을 때 가장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나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조차도 언젠간 실수를 할 것이다. 내가 누군갈 용서한 적이 있었어야 나도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도 '관용'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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