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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Apr 08. 2024

친구야, 우리 헤어지자

가까웠던 관계가 멀어지는 과정


최근 한 친구의 인스타 팔로우를 조용히 끊었다. 공평하게 내 팔로워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우리 “관계를 끊자”는 약속은 없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 대한 연락이 뚝 끊겨버린 것으로 직감했을 것이다.


나는 그 친구와 한동안 꽤 가까웠다. 그 친구랑 나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고 (전 직장의 경영난으로 인한 퇴사) 조용하고 감성적인 성격이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꼈다. 회사에서 누군가와 친해진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늘 퇴사를 하면서 점점 멀어지고, 시절인연에 그친 ‘지인’들이 참 많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 친구와는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같은 사람일 거라는 착각


유독 빌런들이 많던 전회사에서 유일하게 통했던 우리 둘은 마치 외눈박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두눈박이들 같았다. 몰려다니며 누굴 험담하거나, 또는 아예 결혼이나 남편 얘기만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우린 유일하게 평범한 일상이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녀가 나와 결이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가 잘 맞는 것은 분명 우리가 같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개인적인 일로 나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때, 나는 그녀가 나와 가치관이 많이 다른 것을 느꼈다. 애초에 그랬다. 그저 처음엔 그 깊이까지 알 수 없었던 것일 뿐.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대가 컸고, 특히 통제적인 성향이 있었던 나는 여러 안건에 대해 그녀가 내 생각과 같지 않았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소한 서운함이 쌓이고


그렇다고 내가 그녀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녀와 슬슬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녀에게 후순위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 다음부터였다.


그녀는 나와 한창 가깝게 지내던 와중에, 갑자기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다. 오히려 힘들어하는 그녀의 기분전환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응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나는 별안간 튀어나온 남자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났다. 차라리 처음부터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그래도 적어도 몇 개월간 그녀의 곁에서 늘 첫 번째 ‘절친‘ 자리를 지키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남자친구보다 후순위라는 것은 꽤 배신감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난 남자친구가 생기기 전과 후의 그녀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 지에 대해 너무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그럼에도 공감은 나의 몫


내가 언젠가 그녀에게 나는 웬만하면 공감을 잘해준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였는지 그녀도 그녀의 힘든 일들에 대해 부담 없이 나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의 역할이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다. 친구로서 그녀가 힘든데 하소연하는 것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바라는 공감의 기준이 매우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그녀가 내게 엄청 무거운 얘기를 했을 때, 그 주제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어떤 리액션을 해도 너무 기계적으로 느껴져서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에 그녀는 내게 그것이 매우 서운했다고 말했고, 나에게 그 정도도 말하지 못하는 건가 서러웠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당황스러웠고 많이 부담을 느끼게 됐다. 그래도 그녀가 그만큼 본인의 마음이 힘든 것이리라 이해했다.


그러나 그 후 그녀는 내게 남자친구가 본인의 하소연을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들어준 것이 고마웠다라… 나도 그때, 그리고 숱한 기간 동안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줬었는데 나에겐 그 고마움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일전에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했다고 서운하단 말을 들었던 나인지라 생각이 삐딱해졌다. 그녀가 남자친구와 나에게 바라는 공감의 수준이 과연 동일할 지도 의문이었다.





친구야, 나도 힘들었다.


그녀는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런 그녀 앞에서 내가 가진 소소한 고민들은 배부른 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에게 내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그녀는 관심 없는 티를 내거나 그런 고민을 내비친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처럼 말하곤 했다. 실제로 나에겐 별 볼 일 없고 한심한 고민이 많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 그런 얘길 꺼내지 않게 됐다.


몇 주 전, 이제 몇 달 전이라고 해야 하나. 24년이 밝고 나서 나는 유독 힘들었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야 하나 고민했고 수많은 고민, 심리 상담을 통해 멘털을 겨우 붙잡고 살아가야 했다. 그런 와중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듯 그날도 본인의 힘듦과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예의상 내 안부를 묻는 그녀에게 나는 내 아픔을 말할 수 없었다. 그녀 입장에선 별 거 아닌 사소한 것에 힘들어하는 나이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았다. 그녀가 그렇지 않고 진심으로 들어줄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 내 고민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 설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둘러댄 후 말하지 않았고,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힘든 일을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친구이다. 그러니 말을 하는 그녀도, 말을 하지 않길 선택한 나도 잘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쪽만 말하고, 한쪽은 말할 수 없는 관계는 더 이상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나완 너무 다른 그녀에게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것들이 (그러나 그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일 뿐이라 바꿀 수 없는 것들) 내가

너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좁아져 버리니까, 더 이상 감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녀가 잘못한 것은 없단 얘기다. 오히려 인내심 없고 예민한 내가 문제라면 더 문제겠지.


다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나도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그녀가 아닌 누군가에게라도. 나 진짜 힘들었다고. 아무리 덜그럭거렸던 관계라도 떼어지고 나면 시원함보단 공허함이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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