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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Jun 24. 2024

사라지지 않는 감정

왜 사라지지 않을까


나름대로 여러 번의 이직을 거쳐 여러 회사들을 다니면서 다양한 빌런들을 경험하며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면역은커녕 방어기제와 회피 성향만 나날이 커지는 것 같다.


작년부터 크고 작은 이슈로 나와 트러블이 있던 모 팀장이 올해 초 나에게 큰 말실수를 했다. 의도는 명백히 나를 모욕 주려고 한 것이었으므로 ‘실수’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 말을 한 배경에는 BM과 조직에 대한 몰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즉 잘 모르고 한 말이기 때문에) 우선 ‘실수’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요즘 말로 그 말에 크게 긁혔는지 몰랐다. 매번 나에게만 저러는 것에 내 문제가 있지 않은지 내심 걱정스러웠다. 우리 실장님을 비롯해 본부장님 등 윗사람들도 그쪽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해주셨지만, 그것에 대한 사과는커녕 제대로 된 인정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큰 무력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거의 한 달 넘게 감정 조절이 어려운 우울증세에 시달렸다. 별것 아닌 일로도 울거나 화를 내서 팀원들을 난감하게 하기도 했다. 결국 어떤 팀원은 추후에 그런 나 때문에 한동안 피곤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풀리지 않는 억울함, 분노, 그리고 낮은 자존감이 똘똘 뭉쳐 부정적인 기운을 쉴 새 없이 내뿜었다. 나도 이런 내가 너무 싫었기에 그로 인해 또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우리 팀은 그래도 다들 착한 편이라 우울에 빠진 나를 늘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었지만, 한편으론 그 사건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크게 망가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나도 왜 이 사건에 이렇게 내가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어서 심리상담도 받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스스로를 많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뭐 하나 명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고,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내 증세는 자연스럽게 호전되었다. 난 그것으로 내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에 오랜만에 본사에 방문할 일이 생겨서 그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그 팀장을 마주했다. 보는 순간 숨이 막히고 확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팀장이 내 인사를 무시하는 것이었다. 못 봤다고 하기엔 너무 정면에서 맞닥뜨렸고 눈도 마주친 상황이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오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뉴진스 인사를 무시했던 방시혁이 바로 생각나서 이게 얼마나 유치한 짓인지 실감하게 됐다. 처음엔 유치하고 치졸한 게 웃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 장면을 곱씹게 됐다.


이젠 타격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움받고 개무시당하는 게 많이 기분 나쁘긴 했다. 그리고 매번 나한테만 이런 기분 더러움을 주는 그 팀장이 너무 증오스러웠다. 물론 나 말고 여기저기 사방에 시비 터는데 내가 유독 타격을 입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게다가 나는 그 팀장의 말 한마디에 거의 한 달을 우울해했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말한 거면서, 그렇게 막 뱉은 것에 대한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 게 너무 억울하고 열받았다.


복수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 팀장에게 내가 받은 고통을 똑같이 되돌려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이 회사를 다니면서, 또 사회생활을 하면서 까마득히 높은 직급의 상사에게 그럴 일은 거의 불가능하단 것을 알았다. 한편으론 계속 복수심이 드는 나 자신이 너무 지질하고 싫었다. 하지만 그거 외엔 응어리진 감정을 한 번에 쓸어내릴 카타르시스가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꿈을 꿨다. 그 팀장이 나왔고 나는 그 팀장에게 내가 그동안 억울했던 것, 화가 났던 것을 여지없이 털어놓았다. 그 팀장의 반응은 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그 꿈만으로도 나는 꽤 시원함을 느꼈다. 사실 복수까지 가지 않아도 난 진짜 그 팀장에게 따지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이 생각 없이 던진 말로 내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


물론 현실에서는 그 팀장과는 그런 기회를 절대 만들지 못할 것 같다. 혹시나 간접적으로 “그때 당신이 너무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해도 인정이나 사과는 절대 못 받을 걸 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게 고작 이거뿐인데도 말 한마디 못해서 몇 달을 힘들어했다는 게 참 슬프다. 앞으로도 회사 생활이란 건 시 이런 분노와 억울함을 수없이 견디는 일일 텐데 내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리고 만약 그때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응어리로 생겨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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