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씨의 손자
하천의 말미에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여, 천말(川末)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십 년간 자연재해 거의 없고 끌어다 쓸 물이 많아, 풍족하지는 않아도 한 번 이곳에 발붙인 마을 사람들은 좀체 떠나려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10년 전, 그 사건 이후로 마을의 명운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천말이라는 이름이 우습게 하천이 거의 메말라버려 가뭄에 허덕여야 했으며, 그 이후로 비가 내리나 했더니 몇 날 며칠이고 폭우가 내려 마을 전체가 잠기기도 했다. 결국 평생을 천말에서 보낸 사람들은 떠밀리듯 모두 마을을 떠나야 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이 저주받았다고 했다. 고작 10년 만에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손에 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이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된 천말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래된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하나 껴 있었다. 불경기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색다른 돈벌이를 찾아 나선 27살 강주석이었다. 노인들만 남은 천말에 새파란 청년의 존재만으로도 특이한데, 그렇다 할 직업도 없는 데다 늘 몸에는 이상한 디지털 장비까지 끼고 다니니 제발 자기 좀 알아봐 달라 시위하는 수준이었다. 듣자 하니, 돌아가신 강 씨 할아버지의 손자라곤 하는데, 낮이면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다가 밤만 되면 뭘 하는지 번쩍거리는 장비들을 들고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게 영 거슬릴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민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가장 먼저 정 씨가 청년을 내쫓아야 한다며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괜히 마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치면,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천말에 살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남아 있는 마을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동조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이장이 반대했다. 청년을 반드시 쓸 곳이 있을 거라는 이유였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청년이 천말에 살게 된 지 3개월쯤 되었을 즈음, 마을회관에서 낯선 목소리 하나가 송출되었다. 급히 마을 사람들 모두를 회관으로 소집하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청년, 주석이었다.
“이게 다 뭔가?”
구부러진 몸을 이끌고 모인 사람들에게 주석은 지난 3개월간 마을 이곳저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건넸다. 다 똑같아 보이는 검은 풍경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 같은 것들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다. 눈이 깜깜한 노인들이 사진 가까이로 눈을 들이대며 묻는데,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귀신이요.”
“뭐?”
“이 200장 넘는 사진들이 다 귀신이에요. 사진으로 못 찍고 본 것들은 더 많고요.”
이런 미친놈, 가장 먼저 욕을 뱉으며 일어난 사람은 마을에서 슈퍼를 하는 정 씨였다. 생각보다 험악한 반응에 주석이 순간 움츠렸다.
“몸 불편한 노인네들 모아놓고 기껏 보여주는 것이 귀신이냐 이 말이여! 내내 우리 마을 와서 이곳저곳 들쑤시면서 뭐허나 혔는데 고작 이따위 귀신 사진이나 찍으려 그랬냔 말이여!!”
아아, 그게 아니구요.. 역시 잡귀가 많은 동네라 그런가 지역 민심도 팍팍하다. 일반 사람들 대하듯 하면 안 되겠구나 판단이 선 주석이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실은 제가 퇴마사예요.”
“뭐?”
“마을에 자꾸 이상한 일 생기는 거, 그거 이상한 잡귀들 많아서 그런 거예요. 제가 그거 물리쳐 드린다구요.”
그걸 어떻게 믿어, 이 사기꾼아! 목청만은 정정한 정 씨의 사자후와 함께 신발 한 짝이 날아왔다. 가까스로 피한 주석은 그제야 핏발 선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을 확인했다. 저게 저렇게나 노할 일인가. 순간 섬찟함에 온몸이 쭈뼛 섰다. 무언가 잘못 됐다는 생각에 서둘러 상황을 수습했다.
“그... 못 믿으실 수도 있는데 유튜브 아시죠. 거기에 ‘퇴마왕자’ 치면... 구독자 50만인데...”
“......”
“그... 트로트 왕자 김 군이랑 찍은 사진도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이게 아닌데... 김 군 카드까지 썼는데도 통하지 않았다. 당황해하는 주석에게로 귀를 찢는 고함이 들려왔다.
“당장 우리 마을에서 나가!!”
급하게 김 군 사진을 뒤지던 손이 멎었다. 놀라서 등골이 오싹하게 굳었다. 힘 하나 없는 노인에게서 나온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찢기는 목소리였다. 그제야 주석은 부들거리며 떠는 한 노인의 표정과 마주쳤다. 그리고 메뚜기떼들처럼 노인들에게 번지기 시작했다. 당장 나가, 이 못된 것아, 우리 마을에서 나가... 악을 쓰는 노인들의 목소리에 주석의 귀가 먹먹하게 잠겨오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당황스러움이었다. 매일 같이 흉악한 악귀들을 보면서도 솜털 하나 안 죽는 담력의 소유자 주석이었다. 그러나 제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을에서 무작정 몰아내려는 노인들을 보자 주석의 온 털이 쭈뼛하고 섰다. 노인의 눈에서는 이윽고 살기까지 느껴졌다.
“아... 아,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떠는 주석에게 이장이 다가왔다. 강하게 항의하는 동네 노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물었다.
“자네, 정말 퇴마를 할 줄 아는가?”
주석이 눈이 빨개져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럼 됐네, 이장이 짧게 응수했다. 그리고 이장은 항의하는 사람들 앞으로 묵직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정말 소름 돋게도 개떼처럼 달려들던 사람들이 쥐 죽은듯 고요해졌다. 고요 속에서 갇힌 벌건 눈알들만 끝끝내 꺼지지 못하고 주석을 노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