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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구 Oct 27. 2024

퇴마왕자 강주석 02

퇴마 의뢰



“안녕하세요. 퇴마왕자입니다... 오랜만에 켜는 라이브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공지한 대로 지난 3개월 동안은 천말마을에 갔었는데요. 다들 아시죠. 제 고향이기도 했고 갑자기 사람들이 마을을 많이 떠나서 뉴스에도 나오고 그랬던 곳이죠. 그런데 제가 본격적으로 퇴마 영상을 찍기 전에 여러분께 추가 공지를 하려고 해요. 사실 여기 분들의 민심이 별로 좋지가 않아서 제가 최초로 퇴마를 포기하고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하거든요...”


주석의 목소리가 풀이 죽어 가라앉아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야 어디에나 있었다지만, 이런 식의 냉대와 소박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할 것처럼 살기에 가득 찬 눈빛들 하며... 귀신 잡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싶었다.


그래도 나름 오랜 시간 준비한 기획이었는데 아쉬웠다. 코로나 터지고 취업길 막히면서 취미로 하던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살려 봐야겠다 했다. 본인에겐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특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귀신을 퇴마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야 엄청 많지만, 본인처럼 귀신을 퇴마 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굿을 해야 하거나 의식을 치르는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주석은 조금 달랐다. 처음 본인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다락방에서 자다가 가위가 눌렸다. 섬뜩한 기분에 눈을 떠보니 이상한 아저씨가 거꾸로 매달려 저를 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아저씨는 점점 다가왔고 어린 주석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얼굴을 힘차게 밀어냈는데... 어? 당황한 얼굴을 한 건 주석뿐만이 아니었다. 잠자는 애 하나 놀래보려다 얼떨결에 뺨을 얻어맞은 아저씨였다.


“너, 너... 어떻게...”


아저씨(귀신)는 뺨을 부여잡고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민망한 듯 바로 연기가 되어 퓽 사라졌다. 그것이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를 만진 기억이었다. 으, 주석은 뒤늦게야 제 손에 끼쳐오는 생생한 수염 촉감에 소리를 질렀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악질이었다. 중학교 때 만난 친구 영범이가 이사 온 후로 맨날 악몽을 꾼다고 했다. 주석은 그때만 해도 본인이 얼떨결에 수염 난 아저씨 귀신을 만졌단 사실을 비밀로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날이 꺼져가는 영범의 눈밑과 그에 비례해서 적어지는 말수를 보자 측은함이 들었다. 결국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간절했던 영범은 주석의 말을 바로 믿고 그날 밤 주석을 집에 초대했다.


그리고 그날 새벽, 곤히 자던 주석을 영범이 다급하게 깨웠다. 겁에 질린 친구 위로 웬 여자 귀신 하나가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온 동네 귀신들이 정모라도 하듯이 온갖 잡스러운 귀신들이 득실득실 그 방에 모여 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귀신 잘못 만지기라도 해서 오히려 화를 당하면 어떡하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러나 귀신 하나가 긴 머리를 내려뜨리며 영범의 목을 누르려고 하자, 순간 초인적인 힘이 먼저 나왔다. 어떻게 했는 지도 모르겠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귀신이 벽 너머로 나동그라져 있었다. 그제야 주석은 제가 두 손으로 귀신을 집어던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예상치 못하게 제 동료가 당하자 방구석에 박혀 있던 귀신들이 슬금슬금 침대 위로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어떡하지. 영범은 옆에서 죽는다고 비명을 꽥꽥 질러댔다. 너무 무섭지만 영범을 두고 떠났다간 다음날부턴 영범과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었다. 결국 주석은 눈을 질끈 감고 베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보지도 않고 벽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펑펑펑 공기 방울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계속 났다. 된 건가? 되는 걸까? 잘 몰라도 계속 휘둘렀다. 주석이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귀신들은 속절없이 먼지가 되었다. 안 그래도 징그러운 귀신들이 팍팍 터져나가는 걸 본 친구는 거의 거품을 물고 기절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베개를 휘두르고 나니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주석은 그제야 실눈을 떴다. 우글우글거리던 귀신 떼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꿈인 줄 알았던 그날 일은 며칠 후 말끔해진 영범의 얼굴로 진짜였다는 것이 판명 났다. 얼굴의 일부처럼 달고 다니던 눈 밑의 그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벗겨져 있었다.


“주석아. 우리 엄마 아빠가 너 진짜 고맙대. 이제 그 귀신들 우리 집에 안 나타나거든. 다시 한번 집에 놀러 오면 진짜 용돈 주신대.”


그러나 불쌍한 친구 하나 도왔던 일은 커다란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그날 이후 주석의 책상에 다짜고짜 돈을 올려놓고 의뢰를 넣는 애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영범이 얘기 들었는데 우리 집에도 와주면 안 될까? 제발 부탁이야.’  

‘안녕, 나 3반 김신혁인데 소문 들었어. 우리 엄마도 너 한 번 꼭 보고 싶대.’


 결국 그날 이후로 주석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앞에선 일진도 찐따도 모두 동일했다. 선생도 학생도 모두 동일했고 군대 선임도 학교 선배도 귀신 한 번만 잡아달라 사정하는 모습 앞에선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별안간 주석의 공상을 깨고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조용하게 앉아 있던 주석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문을 열려고 가까이 가던 주석이 순간 멈춰 섰다. 혹시 정 씨나 다른 적대감 심한 노인네라면 밤중에 해코지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해서였다. 그런 걱정으로 잠시 멈춰 있던 찰나, 문틈 사이로 안심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날세, 이장.”


“밤 중에 무슨 일이세요?”

“오늘 우리 마을 사람들 때문에 많이 놀란 것 같아서 걱정되어 왔네.”

“아...”


그제야 이장 뒤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순간 오전에 느꼈던 소름이 다시 되살아난 듯하여 목을 뒤로 빼자, 이장이 맨 앞에 있는 정 씨에게 눈칠 줬다. 그러자 그 살기 어리던 정 씨가 주눅 들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까는 몰라 뵙고 어리석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아, 이럴 필요는...”


아무리 그래도 까마득한 윗사람에게 인사를 받는 건 좀 그랬다.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이장의 지시에 마을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처음 다락에서 아저씨 귀신을 봤을 때처럼 뒷목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굳이 하실 필요 없는데...”

“그 퇴마...  꼭 해줬음 해서 왔네.”

“네?...”

“자네 말처럼 우리 마을에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거, 그게 다 귀신들 때문인 거 사실 알고 있었네.”


지난날 주석에게 퇴마를 부탁하던 사람들 중엔 주석을 괴롭히고 짓밟던 사람들도 있었다. 돈을 빌린다며 삼만 원을 꿔놓곤 학기가 다 지나갈 때까지 모른척하던 병수가 대표적이었다. 선생님에게 말해도 죽여버린다며 도끼눈을 뜨던 그 애는 막상 주석이 필요해지자 지가 가진 돈을 모두 내뱉으며 엉엉 빌었다. 제발 그 귀신 새끼들 좀 물리쳐주라.


퇴마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무서운 건 귀신보단 언제나 사람 쪽이라는 것이다. 귀신은 쿠션 한 번 휘두르면 사라지지만 병수 같은 놈은 오히려 주석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귀신은 원한을 들어주면 대개는 군말 없이 사라지지만 사람은 위기에서 구해줘도 보따리를 내놓으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굴었다. 귀신은 그런 인간들에게만 있어서 유독 적이 되고, 악이 된다. 그들이 세상 무서운 줄 알고 바짝 엎드려 울게 하는 아주 별 것 아닌 별 것이 되는 것이다.


“아까 일은 모두 사과할 테니 우리를 위해 저 강에 있는 귀신들 좀 잡아줄 수 있겠나.”


마을 사람들의 새까만 눈들이 모두 주석에게 일제히 몰려 있었다. 제사상을 받는 조상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잡아만 준다면 사례는 톡톡히 하겠네. 돈도 쳐줄 것이고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줄 것이네.”


주석은 어둠에 덮인 강을 멀리 내다봤다. 지난 10년간 홍수를 피하려 민가들은 물가와 멀어져 있었다. 주석도 이곳에 오고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석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것이 다 저기에 있다는 것을. 주석이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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