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랑구 Feb 06. 2024

좋은 팀장 나쁜 팀장

내가 만난 팀장님들


나는 회사생활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지만 수차례 이직을 통해 여러 유형의 팀장을 만났다.

이 중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팀장과 나쁜 팀장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선 나쁜 팀장은 팀원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팀장이다.

수직적이고 딱딱한 소통방식 때문이든, 지나칠 정도로 방임하는 스타일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간 그 팀장 밑에서 팀원이 제 능력을 다 쓰고 있지 못하다면, 그 팀장은 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겐 애석하게도 MD가 되고 처음 만난 팀장님이 그랬다. 모 대형 유통사에서 20년 넘게 경력을 쌓은 그 팀장님은 전회사의 조직문화에 너무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일명 군대문화라고 하는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문화였다. 특히 전회사에선 부하직원으로 남자 직원들이 많았어서인지 그는 팀원들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가볍게 욕을 날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비교적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근무하던 게 익숙하던 사람이었고, 회사 생활 경험도 많지 않아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을 좀 힘들어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 팀장님과 나는 팀빌딩이 된 첫날부터 완벽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업무지적을 받고 눈물을 보인 후 다음날 서로 잘해보자며 화해도 했지만,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되었다. 난 팀 회의를 하는 시간마다 또 어떤 말로 그가 나의 자존감을 깎을지 두려워졌다. 어느 날 그는 나를 조용히 카페에 불러내서 MD가 안 맞는 것 같으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까지 말했다. 나는 그의 밑에서 언제나 늘 부족하고 모자란 직원이었고 점점 혼나지 않기 위해 뭔가 해보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너무 힘이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하다가 펑펑 울었다. 그 회사를 다닌 지 겨우 6개월째였다. 엄마는 직장생활 경험이 많았으므로 내 빠른 퇴사가 커리어에 줄 영향을 생각해 퇴사를 반대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회사를 다닐 자신이 없었다. 다음날 또 팀장님의 얼굴을 보고 모진 소리를 들으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게 두려웠다. 난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엄마 마음에 못 박는 소리를 했다. 회사에 가지 않기 위해선 차에 치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러자 엄마는 몇 초 침묵하더니 말했다. 퇴사해. 네가 그 정도로 힘들면 퇴사하렴.


도망치는 것 같고, 비겁한 것 같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날 대표님한테 직접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고 안 그래도 회사에서 팀장님과 내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이 공공연했기에 그 일로 팀장님은 대표님께 불려 가서 한 소리를 듣게 됐다. 그때 대표님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팀장님은 MD를 그만두라 할 땐 언제고 갑자기 이젠 그만둔다는 나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여길 퇴사 해봤자 갈 곳이 없을 것이고 그냥 여기서 잘 적응해서 MD일을 배우는 게 나을 것이라며 조언했다. 나도 그의 말을 들으면 내가 이후 취업도 못하고 다시 무쓸모한 인간이 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백수가 될지언정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그곳에 계속 있긴 싫었다. 그리고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는 바로 다른 회사에 합격하여 공백기 없이 환승이직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 가서도 전회사 팀장님의 말들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MD와 맞지 않고, 능력이 없는 내가 회사를 옮겼다한들 과연 이 회사에서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 간 회사의 팀장님은 전회사의 팀장님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면접을 통해 나에게 느낀 것을 토대로 내게 맞는 직무를 지정해 주었다. 원래 퇴사한 전임자의 후임자로 채용하려고 했는데, 나를 직접 만나보니 그보다는 새로 진행할 프로젝트에 넣는 게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나에게 3개월 동안 실무를 주지 않고 계속 교육과 연습만 시켰다. 주변의 의아함도 있었지만 그는 나조차도 갖지 못한 이상한 믿음을 나에게 갖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해력이 좋고 본인의 업무스타일과 맞는다고 늘 칭찬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전 회사에서 지적받았던 나의 단점들이 이곳에서는 나의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나는 짧게 자주 피드백받는 스타일인데, 그 이유는 팀장님의 지시가 대개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눈에 잘 띄게'라는 말만으로는 나는 팀장님이 원하는 보고서를 100% 구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초안을 우선 빨리 만들고, 그 상태에서 피드백을 받아서 (사진을 더 넣어라, 폰트를 바꿔라, 열과 행을 바꿔라 등등) 결과물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이 부분을 전회사 팀장님은 내가 지시사항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충 해치우려고 하는 것 같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피드백을 위해 1~2일 만에 초안을 내면, "네가 조금만 더 내 말을 생각해 봤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쓴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반면, 새 회사의 팀장님은 나의 이런 부분을 매우 좋아했다. 우연히도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팀장님은 그런 식으로 업무 하는 방식을 좋아했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짧게 여러 번 피드백받는 스타일인 지 오랫동안 고민해서 하는 스타일인지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팀장님과 스타일이 다를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팀장님이 원하는 방향을 100% 모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초안을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매우 기뻐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전회사에서 모두 틀린 것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물론 그 사이 내가 성장해서 조금 더 매끈해지고 노련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전회사에서의 나와 새 회사에서의 나는 180도 다른 인물이 되어있었다. 그의 섬세한 피드백 덕분에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는 팀장님께 인정받기 위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일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100% 살려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었다. 이후에 물론 새 회사 팀장님과도 사소한 일로 부딪힐 때도 있었고 결국 그 회사도 나중엔 퇴사하게 됐지만, 나는 이때 팀장님이 나를 믿어주셨던 기억으로 아직도 그에게 늘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업무능력, 커리어 등으로 따졌을 때 전회사 팀장님과 새 회사 팀장님 중 누가 더 낫냐라고 따지면 그건 사람마다 다를 테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팀장으로서 '나'라는 직원을 어떻게 썼는 지로 보면 새 회사의 팀장님이 훨씬 팀장으로선 잘하셨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회사의 팀장님(실장님)도 '나'를 아주 잘 파악하시고 아주 잘 사용하시는 분인 것 같다. 내가 잘하는 부분을 아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도 그렇지만, 추가로 실장님과 이 팀을 위해 열심히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주시는 분인 것 같다. 실장님에 대한 이야기는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겠다. 여하튼 처음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엔 좋은 분들을 만나 이렇게 이 업계에서 살아남아 일할 수 있었다.


이런 나의 성장기를 되돌아보며, 훗날 내가 관리자가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옛날엔 마냥 얼른 승진해서 조금 더 편하게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무를 잘하는 것은 이제 당연하고, 내가 이끄는 팀의 팀원들도 잘 매니징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많이 어렵겠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때를 위해 늘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존재로 인해 팀원 한 명의 회사생활, 그리고 커리어, 더 나아가선 인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소통의 어려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