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필 무렵 병아리들이 훌쩍 자랐다. 병아리 여섯과 암탉 두 마리는 추위를 피해 셋방 살림 중이었다. 알에서 태어나 줄곧 사람 곁에서 살아온 병아리들은 밥만 기다렸다. 밥시간이 되면 흥분해서 사람 손이나 발을 쪼았다. 까만 병아리들은 청계 새끼라서 그런지 백봉 새끼들에 비해 훌쩍 잘도 날았다. 밥을 먹다가도 머리 위로 날아올라 등을 타고 놀았다. 매일 병아리를 마주할 때마다 등을 사수하려 노력했지만 매번 검은 병아리들에게 뒤를 빼앗겼다. 어깨에 올라탄 병아리를 저글링 하듯 이 손 저 손으로 옮기며 놀았다. 아직 날개가 작은데도 나는 모습은 까마귀 못지않았다. 이리저리 날뛰는 병아리들과 먹보 암탉 두 마리를 모두 통제하기란 어려웠다.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 또 어느새 어깨 위로, 정수리로 날아왔다. 어찌나 호기심이 많은지 이리저리 온몸을 쪼고 당겨댔다. 놀이동산에서 엄마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던 아이들처럼, 어릴 적 방충망을 타오르던 고양이처럼, 부레옥잠을 물고 달아나던 강아지처럼, 어린 동물들은 호기심이 많았다.
바깥 기온이 영상을 웃돌기 시작했다. 실내에서 기르는 동안 자주 모이나 물을 엎어서 더러워진 방을 수습하느라 힘들었는데, 막상 보낼 때가 되니 미묘한 감정이 솟았다. 어미부터 차례로 박스 안으로 들어간 병아리들 울음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충분히 먹어서 만족한 소리임을 알면서도 가끔 박스 속을 들여다봤다. 서로 잡기놀이를 하며 박스 안을 타박타박 돌아다녔다. 노란 박스를 뒷좌석에 얹고 밭으로 향했다. 창밖은 봉오리를 틔운 매화로 붉었다. 굽이진 산을 오르는 차가 하늘과 맞닿을 듯 높아지고 지척에 있던 강이 벼랑 아래로 펼쳐졌다. 푸릇한 잎사귀가 나기 시작한 풍경이 경칩을 알렸다. 며칠 동안 이어지던 봄비가 그친 풍경은 신기할 정도로 맑았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도착한 밭은 며칠 사이 밝아졌다. 밭 아래 매화나무는 꽃으로 하얬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어졌다. 겨우내 시든 삼동파가 언 땅에서 솟았으며, 거뭇하던 냉이가 파랗게 변했다. 밭과 시골에서 여러 계절을 보냈음에도 경칩까지 이어지는 순간은 늘 경이롭다. 추위와 더위가 한차례 씩 밭을 휩쓸며 풍경이 변했다. 도도도 소리가 이어졌다. 박스에서 뛰쳐나온 병아리들이 처음으로 흙 위에 섰다. 작은 발가락 사이로 돋아난 여린 쑥을 밟고, 어미를 따라 풀을 뜯으며 밝은 볕 아래로 나아갔다. 아직 서늘한 바람에도 가느다란 목을 들어 올리고 선 모습이 완연한 닭이었다. 방에서는 커 보였던 병아리들이 밭에선 손바닥보다 작아 보였다. 작아 보여도 병아리들은 빠르게 컸다. 발등을 그네 삼아 놀던 병아리들이 이제는 진짜 횃대로 올라섰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는 흙목욕을 하고, 저보다 큰 닭들에게 깡충깡충 뛰어오르며 덤벼댔다.
잠시 흙 위에 쪼그려 앉아 병아리를 지켜보는 동안, 도토리나무 아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나무 그늘 아래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다리를 꼬고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였다. 효도를 빙자한 여행에서도, 봄맞이 놀이공원에서도, 엄마는 어느 한쪽 벤치에 앉아 여기를 지켜봤다. 재촉하지도 않고 가만히 이쪽을 보다가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돌아갈까?"하고 넌지시 물었다. 늘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던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도 꽤 엄마를 기다린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아직 그보다 더 오래 기다렸다. 반려동물들은 나보다 빨리 나이가 들어서 종종 지켜보는 순간이 왔지만, 엄마를 지켜보게 되는 순간이 언제일지 아직 가늠되지 않았다.
아무튼 몇 차례 봄비가 오고, 파종한 상추가 한 뼘 자라면 곧 여름이 올 터였다. 한여름이 되면 병아리는 어엿한 닭이 될 테고, 밭도 옥수수, 토마토, 오이, 콩으로 북적일 테고, 새로운 작물을 심어보며 지켜보는 동안 나무에는 복숭아가 열리리라 예상하며 하늘을 올려봤다. 그때를 대비할 시간은 짧지만, 기다리긴 길었다. 날이 맑은 덕인지 이번에도 산을 넘어온 매들이 푸른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목련이 핀 후에 벚꽃이 피면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또 다녀오자고 생각하다가 날아들 매를 피해 병아리들을 닭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직 언 밭에는 채 자라지 않은 마늘이 늦기 전에 근을 맺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