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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Apr 02. 2024

지붕 없는 봄

봄비가 여름 장대비처럼 내렸다. 넣었던 외투를 다시 꺼내고 아침 일찍 닭장으로 향했다. 닭장에 비가 새는 걸 화면으로 보고 틈새로 새는 거려니 했는데, 지붕비닐이 완전히 열려 있었다. 드러난 철망 아래로 비에 젖은 달구들이 몸을 털어냈다. 간밤에 바람이 거세게 불더니 결국 지붕이 사라졌다. 겨울에도 멀쩡하던 지붕이 없어진 건 높아진 기온에 앞문을 개방한 탓이었다. 지속될 훈풍을 기대하고 한 겹 벗으면 꼭 이런 문제가 생겼다. 간절기에는 방심하기 쉽고 그래서 한겨울보다 쉽게 감기에 걸렸다. 알면서도 틔어난 꽃봉오리에 쉽게 터놓고 말았다.


봄만큼 시기를 맞추기 힘든 때도 없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가족이나 친구와 나들이를 계획하지만 꼭 그때마다 비바람이 불었다. 꽃이 떨어지고 겨우 나서면 가벼워진 옷과 달리 바람이 서늘해서 곧장 감기에 걸렸다. 기온도 적당하고 바람도 좋을 땐 황사가 심했다. 매일 차창 밖으로 살랑대며 마음을 들뜨게 하더니, 막상 만나러 가면 험악하게 굴었다. 변덕이 심한 게 사람 기분 못지않아서 가끔은 날씨가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듯했다.


간절기에는 옷이 고민이었다. 추위에 대비하면 덥고 더위에 대비하면 추웠다. 하루에 사계절을 겪는 듯 혼란했다. 옷 못지않게 계사도 날씨에 민감했다. 기온이 한순간 높아지다가 훅 떨어져서 비닐을 벗겨야 하는지 덮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그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치를 살피고, 예보를 둘러보지만 맑은 날이 흐려지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새싹과 꽃으로 파릇한 겉모습과 달리 매시간 기로에 서는 계절이었다. 선택은 언제나 어렵고 후회로 남았다.


아직도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분명 기온이 높아서 미리 비닐을 벗겼는데 예상치 못한 바람에 지붕이 날아갔다. 그래도 추위보단 더위가 낫다 생각하며 꽁꽁 덮으면 그때는 꼭 볕이 끓어서 계사 안이 후텁했다. 결국 대비도 방심도 순간의 날씨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그때는 맞다고 생각했지만 뒤늦게 문제가 발생하면 잘못 선택했다고 자책했지만, 의외로 방심한 일이 잘 풀리곤 했다. 선택 자체는 옳고 그름이 모호했다. 순간에 맞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대비하고 예상해도 어긋나는 계절이라 봄은 마냥 아름답지 않았다. 이런 골치에도 기대되는 게 봄이라 곧잘 방심과 상처를 반복하는 애증스런 계절이다.


밭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봄노래로 가득했다. 꽃구경을 나선 인파가 머리 위 꽃송이만큼 출렁였다. 날이 흐려질지라도, 바람이 서늘하더라도, 저물기 전 올해의 꽃을 보러 가는 걸음이 끝없이 이어졌다. 간절기는 대비하기보단 사그라들기 전에 뛰어드는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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