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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May 05. 2024

벌과 밭

밭에는 말벌이 있다. 철망에 거꾸로 매달린 말벌이 손톱보다 작은 집을 지었다. 아무래도 말벌은 위험하기 때문에 커지기 전에 떼어냈다. 집 짓기에 몰두하던 말벌이 주변을 맴돌았다. 빙글빙글 같은 곳을 몇 번이나 확인하듯 돌았다. 죄책감과 합리화가 랠리를 시작하기 전에 자리를 떴다.


다음 날 말벌은 바로 옆자리에 집을 지었다. 아직 손톱보다 작은 크기였다. 닭장 안에서 쥐가 다녀간 흔적을 찾았다. 닭장을 맴돌며 쥐구멍을 찾았다. 구멍은 자갈을 채워 막았다. 다음날, 쥐는 또 바로 옆자리를 뚫었다. 말벌 집도 자라 있었다. 벌집을 떼어내고 쥐구멍을 막았다. 닭장을 오가는 동안 머리 위에선 매가 빙빙 돌았다.


복숭아나무에 초록 열매가 맺혔다. 빨갛게 달아오른 블루베리 잎 아래에도 손톱만 한 열매가 생겼다. 오며 가며 몸을 숙이고 잎 아래를 올려다봤다. 초록 애벌레 한 마리가 복숭아를 움켜쥐었다. 긴 나뭇가지를 주워 애벌레를 떼어냈다. 가지 아래를 구석구석 살피고 떠난 다음 날 또 다른 벌레가 영글기 시작한 열매를 갉아댔다.


블루베리가 푸른빛을 낼 때쯤 직박구리가 날아왔다. 물까치도 열매를 먹기 위해 밭을 다녀갔다. 올해는 블루베리를 맛보기 위해 바람개비를 꽂았다. 블루베리 뒤에 듬직하게 자리한 바람개비가 뱅글뱅글 돌았다. 바람개비를 처음 본 달구들은 꽤액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다, 익숙해진 듯 슬금슬금 다가왔다. 야생 새들이 정말 바람개비를 보고 도망갈까 의구심 어린 눈길로 바라봤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며칠 전 심은 수세미가 시들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종종 모종이 누렇게 말랐다. 며칠 동안 내리쬔 볕 때문일까, 턱끝에 맺힌 땀을 닦으며 유추했다. 밀짚모자를 걷어내고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환했다. 대기까지 바싹 마를 정도로 덥고 건조한 날씨였다. 건조한 더위 틈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종잡기 어려운 날씨였다.


이제 여름이 시작되나 싶어 닭장 비닐을 걷었다. 지붕을 수리하고 방충망을 설치했다. 한참 여름 준비로 뛰어다녔는데, "내일 비가 내리니까 모종을 더 심어야겠다"라는 대화가 아래에서 들렸다. 이리저리 이어지던 말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강한 바람과 빗줄기가 이어진다고 했다. 애써 걷어낸 비닐을 다시 덮어야 했다.


비닐을 보수하는 동안 사마귀 알을 발견했다. 벽돌에 붙은 갈색 진흙 모양이었다. 잘 빚은 토기 같기도 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실오라기 같은 투명한 생물이 사방으로 뛰어갔다. 아직 체색이 투명한 새끼 사마귀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마귀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사마귀는 여름이면 무화과나무나 복숭아나무 근처에서 나타났다. 잎사귀처럼 파란 몸을 좌우로 까딱대며 벌레를 먹을 터였다.


이맘때에는 장화와 장갑을 잘 털어내야 한다. 자칫하면 숨어있던 지네에게 물리기 때문이다. 사람을 무는 지네도 농부에겐 협력 생물이다. 땅 위 포식자가 사마귀라면 땅 아래 벌레는 지네 몫이었다. 식물을 키워야 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생명이다. 그래도 독이 있기에 물리지 않도록 물건 구석구석을 잘 털어내야 한다.


오월 밭은 사람도 새도 벌레도 분주하다. 고인 물에는 갓 태어난 올챙이가 구불댔다. 발이 닿는 곳마다 이름 모를 풀이 자라고, 어제 잘라낸 칡이 또 넝쿨을 이루며 타올랐다. 찔레가 꽃과 가시를 틔우고, 아카시아가 하얗게 번졌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칡을 또 떼어내고 밭을 갈아냈다. 삽과 호미로 퍼낸 땅에 고추와 오이를 심었다. 다음에는 가지와 호박을, 옥수수를 놓았다.


봄동꽃이 노랗게 피었던 자리에 상추가 파랗게 돋았다. 미리 뿌린 씨앗이 해초처럼 무성하게 자랐다. 여린 잎을 떼어내면 비가 내리고, 다시 신엽이 돋았다. 새벽이면 여린 상추 잎을 베어 먹은 부리자국이 남았다. 종종 이빨자국도, 고라니 발자국도 남았다. 밭에는 많은 동물과 곤충이 오갔다. 그 사이로 뱀이 초록을 헤치며 길게 나아갔다. 변함없어 보이는 하루, 고요한 산속 밭뙈기에도 시끌벅적 요란한 계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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