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는 냥반이라 밥을 달라고 울지 않는다. 밥그릇 앞에서 점잖게 집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집사가 늦으면 맞은편 싱크대를 가만히 바라본다. 싱크대는 유광이라 인영이 비친다. 라오는 싱크대에 어른대는 집사의 동태를 살핀다.
라오에게는 정해진 간식 양이 있다. 한 사람이 간식을 준 후에는 더 이상 급여하지 않는다. 이후로 라오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밥을 달라고 한다. 그렇게 간식을 네 번 먹는다. 나는 너그러운 집사가 아니라서 협의를 통해 한 사람당 1/4씩 간식을 주기로 했다. 다행히 라오는 무게를 유지 중이다.
냥반도 밤에는 아이가 된다. 홀로 새벽에 깨어 두려운지 아니면 외로웠던 지 꽥꽥 울어댄다. 뚝심이 있어 어떤 일이 있어도 제 루틴을 지켰다. 이후로 나는 오후 7시부터 오전 3시까지 잔다. 새벽 3시에 라오가 밥을 먹고 그루밍을 하면 옆에서 미뤄둔 책을 읽는다. 다른 가족이 잠든 시각, 라오와 방 안에서 조용히 새벽을 맞는다. 이후로 라오는 크게 울지 않는다. 나는 둘만 깨어있는 순간을 좋아한다. 각자의 고독을 지키며 함께 머무는 평화가 좋다.
해가 뜨면 문 밖이 소란하다. 여러 사람이 여기저기서 내는 인기척에 라오가 귀를 세운다. 라오는 소리에 일가견이 있다. 몇 번 반복된 소리만으로 사람과 상황을 단숨에 파악한다. 라오는 남자를 싫어한다. 계단에서 울리는 발소리만으로도 성별을 알아챈다. 남자라고 판단하면 구석에 숨고 여자면 문 앞으로 마중 간다. 그런데 딱 한 번 배달기사 한 분을 라오가 맞았다. 나는 방에 숨어 있으나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내공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물론 이후로 비슷한 내공자는 온 적이 없다.
라오는 혼자서도 잘 논다. 아무리 휘둘러도 관심이 없어 훌쩍 던져둔 장난감을 갑작스레 사냥한다. 뒷발로 낚싯대를 팡팡 차다가 입으로 날개를 물어뜯는다. 바스락대는 소리에 흥분했는지 더 거세게 물다가 대가 튕기는 순간 깜짝 놀라며 일어선다. 너구리처럼 잔뜩 부푼 꼬리로 장난감을 툭툭 치다가 다시 껴안고 뒹군다. 나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조용히 숨을 죽인다. 혹여 시선이 마주치면 라오가 체면을 차리듯 얌전을 떨곤 앞발을 핥기 때문이다.
라오는 좁은 곳을 좋아한다. 내 방의 침대는 너비 조절이 되지만, 다른 짐을 함께 옮겨야 하기에 번거롭다. 여름이면 라오 체온이 더워져서 한참을 뒤척이느라 잠들지 못한다. 그래서 침대를 힘들게 펼치면 훌쩍 떠나버린다. 나는 라오 때문에 불편하다면서도 침대를 다시 접는다. 너비 80cm 침대에서 꼼짝없이 누우면 라오가 훌쩍 올라온다. 좁은 침대에서 나와 등을 맞댄 채 잠든다. 덕분에 하룻밤 또 라오의 털을 쓰다듬을 기회가 생겼다. 둥글게 말린 등을 장난스레 훑으면 라오가 활처럼 곧아진다. 손끝에 만져지던 뾰족한 등뼈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부드러운 몸체를 슬슬 간질이면 가르랑대며 하얀 배를 드러낸다. 발랑 뒤집은 배를 다시 쭉쭉 훑다가 라오가 손을 물면 그제야 멈춘다.
라오 화장실 청소는 대체로 내가 한다. 치아도 내가 닦이고, 간식도 사 오며 장난감으로 놀아준다. 그럼에도 라오는 혈육을 따른다. 혈육이 일어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혈육이 가는 곳마다 한 발짝 뒤에 머문다. 나는 그냥 하인이냐며 투덜댔다. 그렇지만 어릴 적 라오가 혈육에게 받았던 애정을 나는 알고 있다. 라오도 어릴 적 기억을 따라 사람을 대한다. 혈육과 라오가 애정을 틔우는 동안 나는 애증을 맡았다. 라오와 나는 서열을 두고 다투는 경쟁관계다.
나는 종종 라오를 원수라고 부른다. 항상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라오에게 아빠는 가끔 "네가 우리 집 대장이네"라고 한다. 나는 다른 의미로 원수라고 부른다. 라오는 내 방이나 내 앞에서만 토를 한다. 한때 방광염이 왔을 때도 내 침구에만 소변을 눴다. 그것도 모르고 "여름이라 그런가 이불이 축축하네"라며 누워서 헤엄을 쳤다. 그 모습을 라오가 옆에서 지켜봤다. 하루는 쿵 소리에 깼다. 책상 위로 라오 형체와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라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결에 주변을 더듬거리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전날 읽다 잠든 700페이지가 넘는 양장본이 머리 위에서 만져졌다. 다행히 책은 내 정수리 위에 떨어졌다. 이후로도 라오는 새벽에 잠든 내 얼굴을 물거나 할퀴고 도망갔다. 아직 라오가 왜 그랬는지 모른다. 괴롭히거나 쫓아다닌 적도 없으니 억울했지만, 우리의 애증은 확실히 커지고 있었다.
라오는 원수에게도 종종 관용을 보였다. 내가 남몰래 흐느낄 때면 곁으로 다가왔다. 한숨을 푹 쉬고 제 엉덩이를 내 옆구리에 털썩 내려놓았다. 다른 곳을 응시한 채 곁에 머물렀다. 라오가 숨을 쉴 때마다 옆구리와 엉덩이가 닿았다 떨어졌다. 그때마다 조금씩 내 서러움과 외로움이 탈락됐다. 해결되지 않은 일도 어떻게든 되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이 샘솟았다. 약간의 온기와 숨소리만으로 위로받았다. 라오도 분명 슬플 때가 있을 테지만 내가 다가가 안으면 한숨을 푹 쉰다. 그래도 품을 내어준다. 제 외로움은 홀로 삭이면서도 내 외로움에는 다가오는 관대한 고양이다.
나는 그런 라오를 좋아한다. 화를 내고 의미모를 짜증을 부리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변덕이 좋다. 라오가 다른 성격이었어도, 다른 모습이었어도 나는 분명 좋아할 터였다. 혈육 말대로 변덕이 죽 끓는듯한 나지만 라오를 애정하는 마음은 변함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