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 일정은 사라져 버려서 독일 뮌헨은 하루만 여행할 수 있게 됐다. 유럽을 다니면서 정말로 가고 싶었던 관광지가 별로 없었다. 유명하기에 갔던 곳들이 대부분이어서 오늘은 필자가 가고 싶은 관광지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없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씻고 나니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바로 ‘다하우 수용소’였다. 우리나라 형무소뿐만 아니라 베트남 형무소도 가고 상해에서도 임시정부를 갔던 것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이런 장소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다하우 수용소는 1933년 6월 나치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수용소이다. 초기에는 정치범 수용소로 이용되다가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 전역에서 끌려와 수용되었던 곳이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조원 언니 한 명이 먼저 수용소를 갔고 필자도 후발대로 출발하여 수용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독일 대중교통은 처음이었으나 다른 나라에서도 잘 찾아갔기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상철로 대략 1시간 정도 이동을 하는 간단한 루트였다. 관련 탑승구에 가서 티켓을 발매하였는데 생각보다 복잡해서 한참을 헤맸다. 먼저 출발한 조원 언니에게 물어봐서 끊는 법을 겨우 찾았는데 현금 투입 화면이 뜨자마자 티켓박스가 고장이 났다. 주변에 있는 현지인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탑승구 밖으로 내려갔다가 반대편 방향으로 와서 다시 티켓을 끊으려고 했다. 현금을 넣는 화면이 나왔고 지폐를 넣으려고 하니 5,10유로만 투입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나오는 것이었다. 수중에 20유로짜리 지폐밖에 없었다. 역까지 오는 길에는 마켓이 없었다. (심지어 비도 오고 있었다.) 고민을 하다 앞에 있는 다른 현지인에게 10유로짜리 2장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니 지갑을 열어 찾아주었다. 20유로를 채우기에는 부족하여 가진 동전으로라도 티켓을 끊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며 건네주었다. 감사하게 받았으나 8.9유로에 속하는 대중교통 치고 큰 금액을 투입해야 해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때 처음에 티켓박스 관련해서 물어본 현지인이 이 상황을 보고는 반대편에서 걸어와 자신이 티켓 선물을 해주겠다며 만원이 넘는 금액을 선뜻 내주고 바로 열차에 탔다. 급하게 열차를 타는 바람에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 감동을 끌어안고 다하우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생각에 잠겼다. 독일의 잔인한 역사인 다하우 수용소를 가면서 독일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역사를 알되 독일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 다시 한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때는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타고 내리니 쉽게 다하우 수용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공원인가 싶을 정도로 위압감 있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산책로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다하우 수용소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설명문이 나왔다. 지금 위치해있는 곳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간략하게 적어놓았으며 입구에 도착하니 이 수용소의 유명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참혹한 역사현장에서 이런 문구를 뱉은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니 추모의 벽이 있었고 그 앞으로 전시관이 위치해있었다. 나치 수용소들의 위치와 다하우 수용소의 역사 그리고 실제 수감자들이 당했던 고문과 사용했던 물건들이 있었다. 슬픈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는데 <인생은 아름다워> 나치 정권에 관한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슬픈 장면을 밝게 표현한 것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든다. 전시관에 있는 사진 또한 그랬다. 수감자가 임상실험으로 인해 웃는 표정으로 찍힌 사진을 보며 다시 한번 마음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감자들이 지냈던 침상을 보고 그들이 사용했던 변기를 보면서 인권유린의 현장을 그대로 접하는 것에 참혹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이 극심한 고통을 보면 와 닿지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말이 딱 내 상황과 일치하는 것 같다. 믿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조금 더 걸어가니 가스실이 나왔다. 처음에는 외관이 아담한 집처럼 생겼기에 가스실 인지도 몰랐다. 들어가서 옷을 벗고 샤워실이라고 적힌 가스실에 들어가 죽음을 맞이하고 소각장으로 들어가 신체가 태워지고 나서의 과정을 다룬 곳이었다.
이곳이 대량학살의 모티브가 된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기운 자체가 음산했다. 이곳을 보고 나서 추모를 기리는 곳으로 가서 기도를 하고 왔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이 세상에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하루빨리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는 이상적인 내용을 읊고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수용소를 보고 나서 버스에 탔다. 조원 언니와 함께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도중에 참던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은 우는 것이 싫어 참는다고 했는데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슬픔을 느낀 것이다. 언니의 모습이 진심으로 멋있었다. 민망해하는 언니를 위해 이렇게 느끼는 건 대단한 거라고 말했는데 정작 나는 이들의 고통과 역사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됐다.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나 또한 잔인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지 어떤 생각으로 나의 감정이 이루어졌는지는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독일은 지금까지도 반성하고 무료입장을 통해 역사를 알리는 점이 멋있지만 이렇게 함께 아파해주고 고통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기에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