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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Dec 26. 2024

산타를 기다리는 마음

12월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중학생인 열두 살 아들이 혼자 분주하게 거실을 정리한다. 잔소리해야 겨우 했던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평소와는 사뭇 다습이다. 물론 대부분의 잡동사니들을 침대 밑 어딘가로 옮기고 벽장 안으로 숨기기 급급했다. 하지만 덕분에 거실 바닥이 말끔한 얼굴을 훤히 드러냈다. 그것은 아들이 자신의 생일보다도 어쩌면 더 기다렸을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워두기 위한 공간이 확보되자 아빠와 아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조립하고 알록달록한 장신구들로 꾸민다. 크리스마스트리 위를 작은 전구들로 두르고 불을 는 것이 트리 설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이다. 트리를 밝히는 불빛들이 런던의 무거운 겨울에 지친 내 마음을 살짝 들어 올린다. 오후 4시면 컴컴해지는 영국, 집집마다 밝힌 트리의 불빛이 골목길에 새어 나오고, 도심에선 저마다 경쟁하듯 아름답고 화려한 불빛을 쏟아낸다. 쓸쓸하고 우중충한 이 계절이 잠시 환해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12월 24일 저녁, 잠자기 전 아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비장하다.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고, 엄마 아빠한테 쓸데없이 개기는 횟수도 늘어 착한지도 모르겠으니, 이번엔 산타가 안 올 수도 있다고 나는 벌써 며칠 동안 아이의 마음을 떠봤다. 혹시라도 아이 친구들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폭로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산타가 온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타에 대한 아이의 태도엔 변함이 없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산타를 맞을 준비를 했다. 아이는 A4 용지 한 장을 꺼내고 볼펜을 집어 들어 산타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추석의 송편처럼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때 챙겨 먹는 민스파이와 당근을 접시에 담아 벽난로 앞에 두었다. 산타와 루돌프를 대접하기 위한 음식이 놓인 접시와 편지를 가지런히 놓은 후 마지막으로 아이는 집안에 장식된 모든 크리스마스 전구를 켰다. 산타가 집으로 들어오는 통로인 벽난로 주변, 벽난로부터 트리가 있는 바닥, 그리고 트리까지 집안 곳곳 아이의 마음처럼 예쁜 불빛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벽난로 앞에 뒀던 음식들이 사라졌다. 아이는 산타가 다녀간 걸 발견하고 무척 기뻐했다. 굳건한 믿음이 확신으로 가득 차는 순간이다. 들떠하는 아이가 조금 부럽다. 선물을 받은 아이가 부럽다기보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낸 아이의 태도가 부럽다.  마음을 지켜낸 아이가 대견하다. 둠에 지지 않고 반짝이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갑자기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아이처럼 정성스러운 태도와 믿음을 지니면 그렇게 기다려왔던 산타가 어쩌면 내게도 한번 다녀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영 못 만날 것 같은 산타를 한번 기다려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헛될 수도 있는 희망을 다시 한번 마음에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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