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안 먹는거랑 똑같다
회사 식당에 비건 메뉴가 생겼다!
정식 식사 메뉴는 아니고, 샐러드 테이크 아웃하는 코너가 있는데 샐러드 메뉴 중 하나가 비건 메뉴가 된 것이다. 오늘의 비건 메뉴는 콩불고기 샐러드.
실제로 채식하는 분들이 주로 콩불고기 샐러드를 가져가셨겠지만, 비건 음식이 궁금한 논비건분들도 콩불고기 샐러드를 가져가셨을 것 같다. 내가 비건이 아니기 때문에 돈 주고 비건 음식을 굳이 사 먹긴 어렵지만, 회사 점심이라면 한 번 먹어볼 만하니까!
'채식'의 개념에 대해서는 정말 어릴 때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주변에서 채식하는 사람을 보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다. 어릴 때 나를 가르쳤던 영어 선생님이 채식을 시작하셨고, 페루에 살 때도 채식하는 페루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한국인인데 채식하는 친구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도 다들 달랐고, 채식의 모습도 달랐다. 그때 나는 채식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고기를 안 먹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고기를 안 먹어봤으면 모르겠는데, 고기를 계속해서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금연하는 거랑 비슷한 걸까?
그리고 약간은 별나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상대방이 채식을 하는데 내가 앞에서 스테이크를 썰면 실례인 건가?라는 생각에 주로 비건 식당에서 만났고 채식 메뉴들은 '고기도 안 들어간 주제에' 비쌌다. 고기 안 먹는다고 해서 식비가 아껴지는 것은 아니군
그런데 얼마 전에 채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팀에 술과 커피를 전혀 안 마시는 분이 합류하셨다. 알코올과 카페인이 영 맞지 않는다고...
그래서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과일 주스를 파는 카페로 가서 그분은 딸기 주스를, 나머지는 커피를 주문하게 되었다. 회식을 하더라도 우리는 소주를, 그분은 사이다를 마셨다.
그분이 커피나 술을 안 마시는 게 별나 보이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분의 '선호'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채식도 비슷하다. 그냥 이유가 뭐든 고기를 안 먹는 것이다. 누구는 오이를 안 먹고, 누구는 가지를 안 먹는 것처럼, 비건은 고기를 안 먹는 것뿐이다.
우리가 오이를 안 먹는 사람과 식사 약속 잡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그 사람들 앞에서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것을 민망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에서 만나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된다.
이쯤 되니 내가 회사에 비건 메뉴가 생겼다고 호들갑 떨었던 게 민망해진다.
사실은 그냥 새로운 메뉴가 하나 더 생긴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