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기와집은 부잣집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런 기와집이 우리 동네에 딱 한 가구였다. 그런데 그 집 기와집은 보통의 기와집과 또 다른 기와집이었다. 기와집 중에서도 보기 드문 D자 형태로 멀리서 보면 마치 궁중 대궐 같은 느낌이었다.
그 웅장한 만큼이나 그 집에는 전용 목욕탕까지 갖추고 있었다. 동네 모든 집들은 마을 공동우물을 이용했지만 그 집은 지하수를 모터로 끌어올려 이용한 수도시설이 있는 특별한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 입구에서 마당까지 깔끔한 시멘트 포장이었고, 집 뒷 뜰과 마당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까지 턱 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비단 집뿐만 아니라 동네 논과 밭의 90% 이상을 소유하는 등 동네 부자를 넘어 면에서도 손꼽히는 부잣집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 집에 그 시절 가장 보유하고 싶고 부러워했던 텔레비전이 안방에 턱 하니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 집이 보통 부잣집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 당시 텔레비전은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면 꿈도 꿀 수 없었던 그야말로 진귀한 물품이었다. 이런 희소성이 만큼이나 동네 사람들의 관심 또한 대단했다. 밤이 되면 동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그 기와집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싶다.
당시에는 소리로만 듣었던 라디오조차도 흔하지 않았던 시절 그러나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움직이는 화면이 나온다는 그것 자체부터가 대단한 호기심이었다.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을 정도로 그 시절에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외화시리즈 타잔이나 혹은 수사반장 그리고 로버트 태권브이 같은 인기 만화영화였다.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날 밤이면 어김없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그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레슬링과 프로복싱 경기가 있던 날은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집 안방은 물론 마루까지 차지하며 김일선수의 박치기에 열광했고 홍수환 선수의 4전 5기에 벌떡 일어나 손뼉 치며 응원했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의 모습 -출처 인터넷
그러나흙먼지 펄펄 날리는 시골바닥을 하루 종일 뛰어놀다 저녁 무렵 그 지저분한 발을 씻지도 않고 그 집 안방에 들어가 밤 열 시가 넘도록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그 집에 대한 민폐였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주인들은 싫은 내색, 싫은 소리 하지 않았고, 알아서 갈 때까지 참고 또 참아 준 그 집주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집주인들은 혹시 이런 마음은 아니었을까, 자칫 안 좋은 소리나 했다가 어린애들 마음에 상처나 주고 그래서 다시는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속 깊은 마음의 배려는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동네에서 하나뿐인 텔레비전으로 부잣집은 마음 넓은 아량으로 동네사람들의 방문을 끌어안아 줬고, 동네사람들은 그런 부잣집의 마음을 알기에 조금은 눈치가 보일지라도 그 부잣집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었을지 모른다.
텔레비전 하나로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정을 나누며 지냈던 시대는 지나고, 지금은 흐릿한 흑백의 화면에서 사람 땀구멍까지 훤의 보일 정도로 선명한 컬러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화면의 크기가 가로와 세로 몇 센티미터의 화면에서 그보다 수배나 큰 화면으로 변모했다.
또한 하루대여섯 시간에불과했던 화면 송출은 24시간 송출로, 고작3개의 채널이었던 것이 지금은 수십 개의 채널로 변화했다. 그리고손으로 일일이 돌렸던 채널은 조그마한 리모컨하나만으로 편히 누워 돌려 보는 텔레비전으로변했다.
이렇게 어릴 적 그 기와집에서 봐왔던 텔레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되고 좋아진 텔레비전 이건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 조그마한 흑백텔레비전의 추억이 오늘따라 더욱더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