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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님이 왜 죄송해야 합니까?

by 거창 신부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새삼스럽게 다가 온 가을이 더욱 반가운 이유는 그만큼 올여름이 폭염으로 점철됐기 때문은 아닐까요, 유난히도 비도 많이 내리고 높은 습도로 인한 불쾌한 날씨와 싸워야 했던 올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자연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요, 도저히 물러가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도 백기투항 서서히 물러나고 있습니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한낮의 기온도 25도 안 밖에 머무는 등 여름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이런 여름과 달리 가을은 누구나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단지 사람이 활동하기에 딱 좋은 기온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수확의 풍성함과 산과 들에서 갈아입는 형형색색 아름다움은 가을의 가장 큰 매력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을만큼이나 차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요, 따뜻한 차 한잔이 주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더 여유 있게 만듭니다.


어제 점심 식사 후 직장동료와 카페에 들러 차 한잔을 마시며 밖을 쳐다봤습니다. 비 내리는 도로 위에 택배차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그것을 바라보니 올여름 무더위가 한창 심했던 8월의 어느 날이 문뜩 떠 올랐습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그날 회사 업무차 잠시 외출 후 돌아와 지하 6층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지상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며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 탔습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다시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카트에 물건을 가득 실은 택배 기사였습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택배기사는 승객들에게 미안했던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택배기사는 뭐가 그렇게 죄송했을까요, 물론 원활한 승강기 운행에 약간의 지장은 준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는 아닙니다. 단지 택배 배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더군다나 승강기 안 그분들이 필요해서 시킨 택배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배달하기 위해 그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택배 기사님들, 괜스레 주눅 들어할 필요 없습니다.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손쉽게 돈 벌려는 요즘 세태에 진정한 땀의 대가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택배기사님들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올여름 그 누구보다도 폭염과 힘들게 싸웠을 택배기사님들에게는 가을은 더욱더 반가운 계절일 겁니다. 그래서 저 또한 가을이 무척 좋습니다.


커버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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