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Feb 25. 2021

아이도 주문이 되나요

올 해 주문 해보려고요...

결혼 8년 차가 되니 상상에서조차 그려지지 않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임신은 나의 일이 아니고 내가 겪을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마음을 덮어두었다.


많은 난임 부부들이 이야기를 한다. 결혼을 하면 순리대로 아이는 당연히 생기는 줄 알았다고...  임신이 안 되는 것이 나의 이야기가 될 줄 몰랐다고.



직장의 문제, 자신감의 문제 등으로 잠시 유보되었던 시험관 시술에 대한 도전(뽐뿌)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마도 연말에 주로 마음이 불안하고 연초에는 새해답게 계획을 세워보고 숙명처럼 해내려고 용기를 내는 타입인가보다.

둘째를 가졌다거나 태어난 사실을 알았던 아이가 벌써 유치원을 가고 학교에 들어간다는 근황 토크는 불편한만큼 자연스러웠다. 확실한 리액션 없이 살았던 내 삶에 한 번씩 근황이나 안부로 돌이 던져지곤 했다.

친구가 학부모가 되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임신은 여전히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오롯이 다른 사람이 겪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다.


확실한 리액션은 없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확실한 혼자만의 좌절은 있었다. 꾸준했고 눈물이 나도록 내 몸이 원망스러운 날도 있었다. 난임을 겪고 있는 (난임은 부부가 함께 겪지만 대부분)여성은 스스로를 많이 자책하고 원망한다고 한다. 평소에 내가 관리를 좀 더 했더라면... 내가 좀 더 어렸더라면... 내가 좀 더 일찍 병원을 다녔더라면...


 일 년이면 두 번은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임신에 자신 없는 내가 선택한 안정제 같은 것이었다. 아직 어리니 잘 준비해보라는 조언과 '괜찮다'는 소견으로 먹고 사는 사람처럼 위안받으며 안도했다.

결혼 8년 쯤 되니 남편과 함께 챙겨야 효과가 있다는 엽산과 오메가3를 먹었지만 기약없는 임신에 '언제까지 먹지..' , '먹어서 뭐하나' 라는 생각에 허무했고 자신이 부끄러워 그마저도 끊은 지 오래였다.


삶의 초점을 오로지 임신에만 맞추며 평소 몸가짐 마음가짐을 제대로 가꾸며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부터는 좋아하는 치킨과 맥주는 불금을 기념하는 경건한 의식이었고 놀다가 필 꽂히면 새벽에도 걸어서 영화관, 카페, 음식점을 남편과 슬리퍼 신고 전전하는 날들도 있었다. 주말 아침은 기다렸다는 듯 맥모닝으로 점심은 라면으로 저녁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일요일 저녁이면 주말의 끝을 잡고 평일을 허덕이는 직장인으로 살았다.


배양산삼, 건강식품을 은근 챙겨주셨던 시댁은 '저는 이상이 없다더라'는 말에 더이상 채근하시지 않았고 정말 정말 어느 순간 툭 치고 물 밀듯 나보다 똥줄 타는 심정을 토로하는 엄마만 있었다.


서울의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로 왔을 때 유명한 병원에서 지었다는 한약이 세 달간 배달되어 왔다. 이미 한약이라면 몇 차례 먹어봤지만 딸래미 나이가 한계치에 도달했다 생각했으리라.

부응하듯 효과없는 한약을 먹고 시골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년 전 새해에 비슷한 내용의 난임을 겪는 나의 상황과 감정을 글로 담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남편과 나는 의사에게 우리가 병원을 찾은 이유와 검사와 진찰을 통해 몸을 낱낱이 고백하고 비행기를 타고 간 보람도 없이 두루뭉실한 계획을 나눈 적이 있다. 자궁의 모양, 혹의 여부, 호르몬의 상태, 정자의 양, 활동성, 모양 등을 혈액검사, 나팔관 조영술, 초음파, 현미경 검사를 통해 임신의 가능성 여부나 의학적 소견을 끝으로 의사의 조언을 첨언하면 대략 내용은 이렇다.


인공수정으로는 되지 않을만큼 상황이 좋지 않고 시험관 시술을 권하지만 이것을 한다고 해도 확률이 1%정도이니 시험관 시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3개월에 한 번씩 한다고 감안한다면 지금부터 서둘러서 시도를 해보자는 것. 항목을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사를 힘이 부치게 했는데 의사의 계획은 너무나 예상밖이었다. 더 생각해보면 정기적으로 산과 검사를 받아온 나는 시험관 시술을 권유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디까지나 의사의 계획이지 나의 계획은 아니었기에 조금 느긋해져보기로 했다. 일단 회사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무리한 스케줄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제주살이 4년차, 결혼 8년 차...

언젠가 그 순리가 나에게도 닿으리라... 숱한 시간, 숱한 날들을 나도 기약없이 상상하며 기다렸다.

이제 나도 한계에 다다랐다. 성분을 알 수 없는 한약을 언제까지 먹을 수는 없었다. 연말이 되니 나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돌이 던져질 근황에 덮어놓고 안생겨요, 모르겠어요 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미래의 나에게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직장의 문제, 자신감의 문제 등으로 잠시 유보되었던 시험관 시술에 대한 도전(뽐뿌)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마도 연말에 주로 마음이 불안하고 연초에는 새해답게 계획을 세워보고 용기를 내는 타입인가보다.


모르는 세계, 알 수 없는 세계를 검색하는 것도 스스로 사양하고 지인에게 추천받은 병원, 추천받은 선생님의 이름만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몽글몽글해지는 귀여운 아가를 원하는 시점에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쓸 수 있다면 그 찬스를 나는 지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자연스러운 순리를 붙잡으러 나는 간다.

작가의 이전글 난(임)중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