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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Feb 27. 2021

나팔관 뚫어드립니다

(Feat. 고통)

 시험관 시술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2년 전쯤 광주의 모 산부인과를 방문했었다.

‘정상입니다' 소리를 들으려고 내원했지만 ‘비정상입니다'가 너무 많아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결혼 7년간 아이가 없었으니 정상이면 오히려 이상한데 말이다.


산부인과도 다 같은 산부인과가 아니다. 미혼의 여성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부인과는 늘 무겁고 어렵지만) 간단한 진료나 검진만 하는 곳, 산모의 정기적 검진과 출산까지 이어지는 산부인과, 조리원과 소아청소년과를 동반한 산부인과, 모든 산과진료를 볼 수 있으며 종양 등의 진료와 치료를 목적으로 내원할 수 있는 종합병원 산부인과, 난임 부부를 위한 산부인과.


우리 부부는 난임전문 산부인과를 방문했고 사는 곳은 제주이지만 고향과 가까운 광주로 선택했다. 간 김에 엄마 얼굴 한 번 더 보고 오겠다는 심산도 있었다. 많은 난임 부부가 그렇듯 기왕이면 점지가 잘 된다는 곳을 찾아갔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버스와 지하철을 바꿔타며 도착한 난임병원.


이곳을 온 것만으로 왜인지 마음의 무게와 죄책감을 덜어냄과 동시에 양가 부모님께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바지런히 도착해 접수를 하니 오전 10시 반.

곧 남편은 정액채취를 위해 비밀의 방을 다녀왔고 이어 혈액검사를 했다.

이제 내 차례.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러 간다. 난임의 이유로 내 몸의 자궁과 나팔관과 난소를 조영제를 투영해 엑스레이로 실시간 관찰하는 검사였다.

하.. 사실 이 검사는 전에도 한 번 받아본 적이 있다. 서울에 살 때 였는데 일 년에 두어번은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사를 받았던 터라 담당의가 나를 만나고 2년 후쯤 권한 난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첫 번째 검사였다.

그날은 하필 토요일이었는데 이른 아침 예약이라 피곤함에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그대로 두고 병원을 갔었더랬다. 그곳도 난임으로 꽤 유명한 병원이었고 나와 같은 검사를 받으려고 검사실 앞 의자에 먼저 온 대기자가 여럿 있었다. 주말 아침 한산하고 조용한 병원안은 말을 하면 100m까지는 우습게 들릴 정도로 소리가 울렸다. 면접을 보듯 두 명씩 호명을 하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2인1조야 뭐야..어떻게 하는 검사길래 두 명씩 가;;)


곧 검사실에서는 으으으...같은 참는 신음이나 삼키지 못한 하이톤의 비명이 들리곤 했다. 어떻게 하는 검사지.. 너무 궁금하면서도 한편 영화같은 신음에 철없게 웃음도 나왔다.


그런데 가만 보니 대부분 초조해서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떨거나 하면서 울림 속에서도 아무도 없는 듯 침묵이 공존했다. 그때만 해도 시험관 시술은 생각도 못한 터라 가볍게 검사만 받자며 무덤덤했던나였지만 긴장이 슬슬 되었다.


2인 1조로 들어가는 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병원의 전략이었고 속옷까지 탈의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앞뒤 트임이 있는 치마를 입고 검사방 안에 또 있는 대기하는 의자에서 기다렸다가 같은 조 사람의 검사가 끝나면 바로 투입되어 검사하는 시스템이었다.


으악! 나팔관 조영술은 무지막지했다.

 의사는 주사기로 질 입구에서부터 조영제를 주입하는데 조영제 액체가 들어오는 압력이 누군가   안쪽에서 살을 꼬집는 느낌인데  살이 자궁인 느낌. 게다가  검사는 가급적 생리   받도록 되어있다. 이놈의 의사는 오늘만도 내가  번째일테고 이 검사라면 수도 없이  봤을건데 아직 스킬이 없나 느무 아프네. 엉엉. 원망섞인 흐느낌과  손의 땀과 눈물이 흐르는 검사였다.


검사가 끝나고도 아직도 어디가 아픈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너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약국을 들러 집을 갈 생각을 하니 하필 토요일이 아니라 다행히 토요일인데 왜 혼자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긴장타던 여인들 모두 남편과 세트로 함께 왔네... 현명하도다.

걷기조차 불편한 상태로 일단 지하철역까지 걸었다. 먹고 기운내서 집을 가자! 써브웨이 로스트치킨에 올리브유와 아보카도 추가해서 야무지게 먹고 혼자 파이팅하며 집에 돌아왔던 기억까지.

갑자기 모두 기억이 났다.


몸이 먼저 통증을 기억했다. 이번에도 베드에 누워서 조영제를 주입할 때 의사가 지시하는대로 몸을 움직여야하는 게 굴욕적이면서도 얼른 끝내고 싶어서 시키는대로 최선을 다했다. 유경험자의 연륜처럼 노련하게 검사를 끝냈다 생각하며 베드에서 내려오는데 악 소리가 절로나는 통증이 느껴졌다.

예전에도 배가 이렇게나 아팠나싶게 통증이 지속됐지만 다행히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구부러진 허리를 짚으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탈의실로 들어가는데 머리가 핑... 정신이 없으면서도 붙잡을 남편 어디있나 고개를 들어 병원을 살피는데 혼자 왔다 이번에도. 차라리 그게 낫다. 남편은 내가 지나가는 것도 모르더라. 핸드폰이랑 살아라 살아! 게임하냐아아!

아파 죽겠는데 서럽다. 탈의실에서 어지러워 한동안 못나오자 간호사가 그제야 발견하고 회복침대에 눕혀주어 살아났다. 사실 남편의 존재는 그렇다. 짐작하겠지만 시험관 시술에서 가장 죽어나는 것은 여성이다. 하하하...

나팔관을 뚫었어요

다시 진료실.

의사의 얼굴이 심상치않고 내 통증도 심상치않다. 아 이렇게나 오래 아프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 귀여운 나팔관은 내 마음처럼 꼬여서 막혀 있었다고 한다. 조영제를 넣는 압력을 이용해서 힘껏 밀어넣어 마치 꼬인 줄을 풀 듯 꼬인 나팔관을 최선을 다해 뚫었고 이런 경우 자연적으로 임신이 될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설명을 들으니 또 아파지는 느낌..


의사의 설명을 더 들어보니 남편의 상태 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자연임신의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한1% 정도..? (이럴거면 왜 뚫었냐..) 일단 정자 상태가 운동성과 양 모두 최하였고 내 자궁은 이제 나팔관이 좀 뚫린데다 난소 나이가 내 나이보다 조금 더 많았다.


인공수정으로도 힘든 케이스니 좀 더 직접적이고 확률이 높은 시험관 시술을 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고 했다. 시험관을 해도 확률이 낮은 편이니 조금이라도 어릴 때(!?) 서둘러 시작하는 게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고 호르몬 주사제를 맞는게 준비의 첫 시작인데 이 병원에서 같이 준비를 하겠느냐고 계획을 묻는다.

영업을 잘하는 의사신가. 난임부부를 매일 만나니 감이 없으신가. 위로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검사의 고통과 비정상이시고 확률은 1% 입니다의 대혼란을 겪는 내게 당장의 결정을 요하시니 더 정신을 바짝 차리는 시늉이라도 해야될 것 같았다.

이 긴장감을 질문으로 승화시키고 답해주시는 사이 생각을 더 해보자.

사실 광주에 와서 진료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귀하다. 새벽부터 준비해서 첫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서둘러 결정을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고, 다시 오는 발걸음은 꽤 먼 시간 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폐경이 빨라지지는 않나요?

'제 난자 갯수는 유한하고 정해져 있을텐데 한번에 무리하게 키우면 폐경이 더 빨리 오는 것 아닐까요..'

한 달에 한 번 탈락될 난자가 생성되고 생리혈로 나오는 과정 중에 생기는 크고 작은 불균질한 난포들을 호르몬제를 주입해서 균질한 크기로 키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즉 어차피 생길 난포를 쓸모있게 키운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시술과 실패를 반복하며 휴지기 없이 무리해서 호르몬을 주입받으면 몸이 쉬이 지칠 수도 있지만 일단 시술로 인한 폐경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  

이식 후 바로 움직일 수 있나요?

배아이식 후 비행기를 타고 바로 제주 집에 갈 수 있을지, 이식 후의 나의 상태를 고려해 친정인 전주를 가거나 병원 인근에 레지던스호텔이라도 잡아야 할 지에 대해서는 바로 비행기를 타고가도 별 무리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제주에서 광주까지 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도 했다.

내 귀를 의심했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영업을 하시며 차근차근 설명을 했던 것과는 달리 환자를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1%의 확률과 이식 후 바로 제주로 가야하는 난임환자. 내 질문에 설명을 하다보니 현타가 온 것인가..? 아무래도 이 의사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에겐 미지의 세계이지만 시험관 시술은 의사의 스킬과 미래의 산모가 될 환자의 편안한 마음이라 들었다.

정확한 일정대로 주사를 맞고 약을 넣어야하니 신경이 곤두서는 일인데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확실한 결과물로 기대하는 일이라 마음의 편안함까지 주려는 병원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히려 이런 내가 부담스럽다는 노골적인 이야기를 들은 이상 이 병원은 글렀다.

모든 검사와 진료를 마치니 오후 3시. 검사하고 회복하는 시간이 조금 걸린데다 병원 점심시간이 겹쳐서 인 것 같다.


다른 병원은 가 볼 생각도 안한데다 저조한 확률에 난임병원 문턱은 더 높아진 기분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뱃속에 떡볶이를 넣고 다시 지하철로 버스로 비행기로 차로 집에 왔다. 거창하고 슬프고 허무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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