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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Mar 07. 2021

시험관 시술 데뷔(2)

식이를 조절하고 주사를 맞고

옥돔을 많이 먹겠네?

의사의 첫 마디였다.

제주에 살고 있으니 옥돔이나 큰 생선을 자주 먹느냐, 그렇다면 생선은 먹지 말아라 더욱이 큰 생선은 손도 대지말라 했다. 수은 등 중금속에 노출이 되는 이유란다. (차귀도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서 갈 수 있지만 다행히 나는 낚시를 하지 않으니 생선은 먹고 싶어도 자주 먹을 수 없었다)


그 다음엔 “임신을 목적으로 한약을 최근 한 달 이내 혹은 전에 먹은 적이 있나” 였다. 게임을 줄이고 운동을 하겠다는 그가 안쓰러워 한의원에 다녀왔었고 그를 위한 보약 한 재를 지으려다 부부가 함께 먹어야 효과가 있다는 한의사의 권유로 거금 60만원을 들여 한 달 전부터 먹다가 게을러 2주 전부터 먹지 않았었다.


지금 내 앞의 담당의는 한약을 먹은 환자는 약을 끊고 몸을 회복(!?) 한 후에 다시 시술 과정을 시작한다했다

언젯적 동의보감이며 그 내용이 생활과 식생활이 다른 현대인의 몸에 아직도 유효한 이야기겠냐 집에 가면 먼저 한약부터 다 갖다 버리라했다. 일정한 수치로 주입되어야 할 호르몬이 오히려 한약재로 인해 교란이 일어나 사용할 수 없는 공포난(정상적으로 난포가 성장하지 않는 난포) 이 많이 생겨 실패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라 했다. 덧붙여 난임환자들은 대부분 시험관 시술과 한약을 병행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은데 시험관 시술이 성공이라도 해서 아기가 태어나면 한약을 먹고 아기가 생긴 것으로 그 공을 한약으로 돌린다며 지탄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 앉은 후로 20여 분 가까이 단백질 섭취, 과일, 빵, 밥, 물 등 오로지 식단관리에 대한 당부 권유 협박을 들었다. 식단을 얼마나 강조하시고 강조하시는지 아예 식단 조절 메뉴얼 한 장을 프린트해서 주셨다. 예를들어 과일이 정 먹고 싶으면 사과는 1/4, 귤은 반절처럼 과일이 건강에 좋다니 무턱대고 많이 먹지 말고 당분이 많으니 소량 먹기를 권하셨고 몸무게 대비 단백질 섭취량, 빵 섭취 금지(먹는다면 통곡물빵)같은 내용의 단순당 섭취를 금지하고 정량의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셨다.


일부러 시험관 시술 경험담이나 과정 등을 검색해보지 않았다. 병원에서 시키는대로만 따라가야지 라는 마음이었는데 아 한약 왜 지었냐.. 주의사항이라도 좀 알아볼 것을 그랬나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인터넷에서 시키는 거 아무것도 하지말고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그렇게 안할거면 지금 나가요”

 넵?

(와, 세다!)

하시는 말씀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한약도 버리겠다 했는데도 이렇게 세게 말씀하시다니.

난 좀 수동형 인간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오히려 믿음직스러웠고 방향을 잡은 것 같아서 묘하게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 분 말씀대로만 하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는데 권유같은 협박이 진료의 전반적인 내용이라 이분이 너무 궁금해서 후기를 찾아보니 ‘안그래도 지친 마음인데 왜 내가 욕을 들어가며 시술을 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 ‘기분만 나쁘고 그냥 돌아왔다’등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많았다.


산부인과 진료에서 내가 가장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은 앞과 뒤가 트여있는 치마로 갈아입고 일명 굴욕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검사받는 시간이다. 게다가 생리 첫 날이니 말이다.

천으로 가려의사 얼굴이 보이지도 않지만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초음파로 보여지는 화면을 보려고 노력한다. 한약을 먹었지만 2주 전부터 복용을 하지 않아서인지 다행히 몸 상태는 나쁘지 않다하셨고 다시 한 번 남은 한약은 아깝다고 먹지 말고 꼭 버리라는 당부와 함께 호르몬제와 엽산이 처방되었다.  


이제부터는 시간에 맞춰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하고 질정을 삽입하고 처방된 약과 엽산을 먹고 다음 내원일에는 난포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면 된다하셨다. 시험관 시술 과정은 대략 이렇다.

호르몬 주입하여 장차 난자가 될 난포를 균질한 크기로 키운다. 난포 생성이 많을수록 체외수정의 기회가 높아진다. 쓸모있는 난자를 채취한다. 같은 날 정자도 채취해서 인위적으로 수정한다. 만들어진 배아를 3일 또는 5일 배양하여 자궁에 이식을 한다. 착상이 잘되고 아이가 무탈히 성장하면 임신을 유지하며 마침내 출산을 할 수 있다.


배아를 이식 후에는 서울에 머무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며칠만이라도 머물기를 권유했다. 그리고 보통 수도권에 거주하는 환자라면 당일 귀가이지만 집과 병원의 거리를 감안해서 1일 정도 입원해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겠다하셨고 중간 중간 내원 확인해야 하는 일도 최소한으로 올 수 있게끔 배려해주셨다.

배아를 이식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도 무관하다했고 제주에서 오니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던 광주 난임병원과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광주 난임병원에서는 무엇을 먹어라, 이것은 안된다하지 않고 자기주장 한 번 없었지만 내 기준 병원 친절도는 협박당한 서울 난임병원이 훨씬 높다.


행동처방과 약처방이 함께 내려져서 소홀히 했던 식사와 넘쳤던 당분을 조절하고 규칙적으로 호르몬을 주입하면 된다는 방향이 결정되니 그대로 따르면 그만일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행동처방 음식처방은 찾아보지 말라하니 속이 다 편하다. 난임극복속성과외를 받는 기분이랄까.내겐 상냥한 미소보다 이게 훨씬 더 친절하다.


간호사님들은 적당히 친절하고 프로답게 복약지도를 해주셨다. 약을 구분하여 설명해주셨고 배에 주사를 놓는 방법을 끝으로 엉덩이가 돌덩이로 변할만큼 아파서 ‘돌주사’라는 설명을 하시며 주사 한 방을 놓아주었다.


보라색 보냉가방에 챙겨주신 주사기, 호르몬제, 약국처방약을 들고 대단한 숙제를 해야하는 모범생의 마음으로 그러나 초연하고 싶은 마음으로 제주 비행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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