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난몇
병원을 다녀온 후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배에 호르몬(과배란 유도)주사를 놓고 질정을 투약했다.
여느 부부는 와이프 배에 주사를 놓아주기도 한다는데 우리 남편은 주사 맞을 시간이면 자리를 피해 거실로 나갔다. 간혹 멍든 곳을 비껴서 어디를 놔야 덜 아프려나 싶어 아직 주사하지 못했을 때 으악 소리를 지르고 다시 나가 “다했어ㅓㅓㅓㅓ???”같은 호들갑을 떨어댔다.
주사는 배꼽을 기준으로 대략 6cm 반지름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매일 번갈아 맞아야 한다. 한 번은 오늘은 어디에 두나아 보자보자 싶을 때 저녁 준비를 하면서 주방에서 가도 돼?? 다했어??? 를 연신 불러대서 주사를 서둘러하려는 모습이 자각되던 날이 있었다.
담당의의 권유 같은 협박으로 집에 온 후로 식사는 제 때 먹으려 하고 매일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한 잔도 끊었다. 당연히 좋아하는 과자 빵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고 치킨과 맥주 모두 없는 맹물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모범생 모드로 의사의 조언과 권유를 잘 새겨들어 지키는 중이다.
내 자궁이 밭이라면 지력을 잘 키워둬야 했다. 방법을 몰랐으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다. 남편은 권유받은 알약 두 알이면 되었지만 나는 달랐다.
몸에 좋다고 많이 먹지 말며 적당한 단백질 섭취, 당 섭취 줄이기. 생각해보면 세포의 대부분은 단백질이니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고기보단 돼지고기, 그보단 닭고기를 선호하는 나지만 철분 섭취도 같이 해주는 소고기를 싫어도 먹기로 한다.
나를 위해 소고기를 굽고 야채를 볶고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주는 것.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식사 후 날 보란 듯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그 모든 것을 해내고도 욕먹는 짓이다.
주사를 직접 놓아주거나 일부러 커피를 절제하진 않더라도 내게 금지된 것을 보며 "못 먹으니까 내가 대신 먹을게" 라거나 "여보 앞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듯"이라고 말하는 건... 옆구리를 꼬집고 싶을 정도다.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시험관 시술은 여자의 몸을 더 헌신해야 하고 더 인내해야 하고 더 건강해야 한다.
주사를 맞는 시간에 행여 약속이 잡히면 화장실이나 차 안에서 주사하고 돌아오곤 했다. 잠깐이면 끝나는 일이지만 혼자서 주사기에 약을 채우고 알코올 소독을 하고 배를 잡고 적당한 곳에 주사를 하는 것은 어쩐지 고독하고 서러웠다.
행위조차 서러운데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조차 제약을 받으니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본인 식성의 만족을 위해 그냥 먹긴 민망하니 장난스레 건넨 말조차 받아줄 여유가 없다. 시험관 시술을 예정이거나 진행 중이라면 남편과 주변 사람들은 말이라도 장난조차 하지 맙시다!
아침과 저녁. 규칙적인 주사와 투약. 매일 오늘의 숙제를 잘 해내기 위해 애썼다. 근데 어째 날이 갈수록 배가 아프고 뱃살이 도톰 해지는 것은 기분 탓이려나. 아랫배가 묵직하고 곧 생리를 앞둔 자궁처럼 느낌이 싸했다. 내원일, 걱정 한아름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자신 없는 소리로 "선생님.. 저... 배가 좀 아파요....."
"잘 됐네요! 한 번 봅시다!"
경쾌한 목소리는 처음이다.
걷기조차 불편해서 아랫배를 쥐며 걱정스러운 운을 뗀 내게 의사는 오히려 미소까지 띠며 말했다.
"아프지 않으면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징조네요"라며 모니터를 보며 설명을 더 이어가셨다.
보통 난포는 18mm까지 성장하면 배란 유도 주사를 맞고 36Hr 후에 난자 채취를 한다. 난포 한 개당 1.8cm 내로 키워야 하니 난포가 여러 개일수록, 잘 자라고 있을수록 배가 팽창되니 아픔은 당연한 것이었다.
서러움, 나만이 아는 아픔의 시간들이 괜찮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괜찮다니 되었다.
다음 내원까지 주사와 질정을 이어가면서 이제는 난자 채취를 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에 배란 유도 주사를 맞고 내원하는 것이 숙제였다.
식이조절과 투약은 계속 이어가고 엽산을 그동안 먹지 않았으니 고함량으로(1,000mg) 처방을 해주셨다.
여전히 남편은 알약 두 알이면 되었고 식이조절을 하면 좋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관계없었다.
최근 음식에 알러지가 생겨서 정자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알러지 반응이 나타나는 음식만 조심하면 될 터였다. 생리주기가 28일이듯 시험관 시술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금방인 것 같다.
다음번에 내원하면 난자를 채취하겠지. 지금까지 예선이라면 본선이 곧 시작될 터였다. 같은 방식으로 간호사님의 투약 설명과 처방을 받고 '돌 주사'를 한 방 맞은 후 제주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