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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가장 Jan 01. 2024

나 홀로 이사

잘 부탁해, 원룸아.

지난 주말 나는 나 홀로 이사를 했다. 사정상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낸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차에 짐을 가득 싣고 회사가 마련해 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에는 제법 그럴싸한 아파트였지만, 추운 겨울 한참 동안 비었던 숙소는 바깥보다 더 추웠다. 하필이면 그날도 저녁에 도착했다. 난방을 위해 보일러를 돌렸지만, 방을 가득 채운 냉기는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날 밤은 그냥 노숙하는 것처럼 추웠다. 있는 대로 옷을 꺼내 입었다. 패딩을 입고, 가져간 이불을 죄다 꺼내서 애벌레처럼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추위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집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이제 그 숙소는 내게 또 다른 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숙소가 바뀌었다. 회사의 사정으로 나는 숙소를 옮겨야 했다. 이 엄동설한에.


두 번째 숙소는 원룸이었다. 다들 연말 분위기에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각, 나는 나 홀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원룸 역시 추웠다. 대체 이곳에서 사람이 살기는 했을까? 싶을 정도로 쓸쓸하고 더러웠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번 주말에 이사를 해야만 했다. 지난 1년간 아파트 숙소에서 살면서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하나둘 짐이 늘어났다. 옷과 책만으로도 이삿짐 용역을 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작 혼자살 원룸 이사에서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었다. 눈앞이 막막했지만, 해야만 했다. 나는 주문을 걸었다. 할 수 있다고, 하나하나 하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청소부터 했다. 쓸고 닦았다. 물티슈 한통을 다 써가며 먼지를 닦았다. 번쩍번쩍 빛이 나도록 닦은 게 아니다. 그저 눈에 거슬리는 큰 먼지를 없앴음에도 대용량 물티슈 두 통을 써야 했다. 작고 오래된 냉장고, 신발장, 작은 옷장,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 화장실... 청소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혼자 청소를 하려니 원룸도 그렇게 넓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끝이 났다. 어느 정도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는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이었다. 나는 그 계단을 하루에 10번을 오르내렸다. 그것도 양손에 가득 짐을 들고 헉헉거렸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옷은 금세 땀에 젖었다. 나는 감기가 걸리지 않게 하려고 얇은 패딩하나를 수시로 벗었다 입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꼬박 이틀 동안 짐을 나르고 정리했다. 내가 가진 짐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낯선 곳에서 1년을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부터 이곳은 온전히 내 공간인 셈이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구도 치우지 않을 것이고, 내가 가꾼다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될 것이다. 같이 사는 사람도 없으니, 타인의 취향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자율성이 그 힘든 나 홀로 이사를 끝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건 평생 처음이다. 대학시절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하숙이나 기숙사, 혹은 친구와 돈을 보태 같이 살았다. 지난 1년을 살았던 아파트 숙소도 룸메이트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혼자다. 때마침 오늘은 2024년 1월 1일이다. 무언가를 결심하기 좋은 날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이곳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혼자 사는 건 외롭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리라. 혹은 누군가와 함께 보낸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거나. 어쨌든 외로움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기력은 감정을 바닥낸다. 혼자 지내면서 나는 웃지 않는 날이 늘어갔다. 저녁이면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영화를 봤다.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즐겁고 행복한 상상을 하고, 조금씩 실천하면서 살고 싶다.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멋진 모습처럼 나는 이 낯선방에게 조금은 더 근사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이번 주말에 나 홀로 이사를 했다. 추운 날이었고, 고된 일이었다. 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자. 앞으로 널 잘 쓸고 닦아줄게. 너도 잘 부탁한다, 원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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