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nmo Kang May 27. 2019

별이 내린 산맥의 그림 한 장.

포르투갈, 피우당 Piódão 으로 가는 길 .

아르가닐 지역 사이트의 피우당 역사마을 사진


Piódão 피우당. 정확한 발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포르투갈 여행을 맘에 담고 루트를 짜다가 어느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 여긴 뭐지. 어느 영문 사이트에서 ‘발견’한 그 사진의 설명은 포르투갈 중부 산악지역의 어느 작은 마을. 천여 년 전부터 독특한 주거 양식을 지켜오고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의 가이드북이나 포르투갈 기행 책에는 이 마을'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가본 분들이 없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 다루지 않더군요. 그래도 제가 들고 다닌 영문판 론리 플래닛에는 이 마을을 포함한 중부 산악지역의 마을들이 꽤 자세히 나옵니다. 포르투갈을 다룬 EBS의 '세계 테마 기행'에도 이 마을이 나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마음이 끌리더군요. 어쨌든, 여긴 가봐야겠어. 꼭.


코임브라에서 차를 빌렸습니다. 대학과 Fado로 유명한 코임브라는 남북으로 길쭉한 사각형인 포르투갈의 위아래 딱 중간 정도에 있습니다. 이 곳에서 동쪽, 스페인 국경 방향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포르투갈의 가장 높은 산악지대, Serra da Estrela가 있습니다. Serra는 산맥, Estrela는 별이란 뜻이니까 '별의 산맥'. 예쁜 이름이지요. 거의 유일하게 눈도 내려 쌓이고 스키 시설도 있다더군요. 산에서 방목하는 양이나 염소에서 나는 치즈가 유명합니다. 피우당은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데도.. 이게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길이 험해서라기보다 교통편이 별로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렌트. 유럽 렌터카는 오토기어 차량이 별로 없고 비쌉니다. 가끔은 에어컨이 없는 차도 있지요. 제일 싼 차를 빌려 정말 오랜만에 수동기어를 넣어 봅니다. 무표정한 렌터카 직원이 차를 주고 가버린 뒤에 바로.. 두 번 시동을 꺼뜨렸습니다. 뭐, 곧 적응하긴 했습니다만.


아르가닐 시내 시계탑
아르가닐 근처의 작은 마을 코자


코임브라에서 피우당까지는 큰길로 달리면 두어 시간이면 닿을 거리긴 합니다만, 저야 그럴 이유가 없지요. 가능한 작은 길로 구불구불, 길을 가다 만나는 동네에 잠깐씩이라도 차를 세우고 둘러보며 갑니다. 그러다 점심 무렵에는 근처에서 그래도 큰 동네처럼 보이는 아르가닐 Arganil 에 들러 봅니다. 점심도 먹을 겸, 정보도 좀 얻을까 해서요. 근처 동네의 행정중심지라 다행히 인포메이션도 있습니다. 한국인을 처음 본다는 인포메이션 아주머니의 유창한 영어 설명을 하안참 듣고 이 동네 특산음식도 소개받습니다. 염소고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동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있는 식당을 들어갑니다. 메뉴는 '샨파나 아 세하나 Chanfana a Serrana'. 산골 아줌마(Serrana)의 염소고기 스튜(Chanfana). 이 집은 감자와 채소를 넣고 삶아낸 스타일입니다. 많이 질기진 않은데 고기의 색이 검고 어쩔 수 없이 냄새가 조금 납니다. 빵과 와인과 함께 먹으면 냄새가 많이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저와 한 팀 정도의 외지인 외엔 다 동네 사람들인 모양입니다. 남부 유럽 시골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대부분은 노인들입니다. 시골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건 전 세계 공통이지요.


샨파나 아 세하나 Chanfana a serrana


아르가닐을 나와서 좀 더 가자 길은 좁아지고 조금씩 산길이 시작됩니다. 구글맵을 짧게, 여러 번 찍고 작은 길로, 더 작은 길로 가다 보니 어느새 차선도 없고 가끔 포장도 덜 된 길들이 나타납니다. 가드레일은 고사하고 한쪽이 절벽길인데 길이 워낙 좁아 이러다 맞은편에서 큰 차라도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다행히 차는 거의 없어서 쇼를 할 일은 없었습니다만. 산이 험하거나 많이 높은 건 아닌데 길이 많이 좁습니다. 차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는 곳이 있어 지도를 확인하니 작은 폭포가 있는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피크닉 중입니다. 산이 많은 나라에서 온 제가 보기엔 그냥 좀 큰 물줄기 같기도 하지만, 날씨가 워낙 좋아 저도 잠깐 함께 놀다 나옵니다. 산속의 작은 마을에 괜히 한 번 들어갔다 나오기도 합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맘대로 다닐' 자유를 작게나마 누리는 거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진에서 보던 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와, 저기다. 피우당이다.


Serra da Estrela 의 산속 마을들


산속의 작은 마을일 뿐이고 사실 특이한 형태의 집들 외에는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곳이지요. 천천히 여행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산길을 따라 근처 마을들로 트레킹도 하곤 합니다만.. 저는 이 곳에서 차로 더 동쪽에 있는 몬산투 Monsanto 에도 갈 생각이라 그냥 하루 머무르기만 했습니다. 돌을 얇게 잘라 지붕으로 쓰는 특이한 형태의 가옥들이 촘촘히 산비탈에 모여 있습니다. 밤이면 골목마다 붉은 가로등이 켜지는데 이 모습이 이 곳을 찾는 주된 이유입니다. 이 집들 중 한 군데에서 민박을 하거나 마을 전체가 다 보이는 맞은편 산중에 있는 호텔에 머무릅니다. 저는 이 '뷰'를 보겠다고 호텔을 예약했는데 의외로 민박이 비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을 입구 주차장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고 마을 내부는 모두 돌계단이라 차는 물론 자전거도 다닐 수 없습니다. 제일 아래 편에 마을의 유일한 흰색 건물인 작은 성당이 있고 그 오른편에 작은 마을박물관이 있습니다. 조그만 광장을 둘러싸고 식당 몇 개와 치즈와 와인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마을의 거의 모든 길을 천천히 한 번씩 걸어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가끔 좁은 골목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지요. 마을을 벗어나 산길까지 나가 보기도 합니다. 마을 아래편 개울가에는 물을 막아 사용하는 수영장 시설도 있더군요. 한여름에는 사용하는 모양입니다.



광장 한쪽의 식당 겸 가게에 들어갑니다. 이제 와인을 한 잔 해야지요. 포르투갈 와인 역시 지역별로 나뉘는데 중남부 알렌테주 Alentejo. 남쪽 바다를 끼고 있는 알가르브 Algarve, 비뉴 베르드 Vino Verde로 대표되는 북쪽 미뉴 Minho. 포르투 와인을 만드는 지역인 도우루 Douro. 그리고 코임브라에서 에스트렐라 산지에 걸쳐 있는 지역인 당 Dão 등이 주요 산지입니다. 이 지역이 바로 Dão이지요.  작은 가게인데도 꽤 많은 와인 리스트가 있더군요. 그냥, 이 동네 와인 주세요.라고 했더니 이 녀석이 나왔습니다. Monte Serra. 그리고 지역 특산음식을 곁들여야지요. 가장 유명한 건 양이나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그리고 염소고기인데 그건 아르가닐에서 점심때 먹었으니.. 그다음으로 부슈 Bucho 를 한 접시 주문합니다. 돼지 위 속에 고기와 쌀을 넣고 숙성시킨 일종의 순대를 얇게 썰어 나옵니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담백합니다. 내친김에.. 피순대인 모르셀라 Morcela 도 달라고 합니다. 구운(Assado) 모르셀라는 정말 비주얼은 좋지 않습니다. 이걸.. 먹어야 되는 거요? 검다 못해 시커먼 모르셀라. 거의 선지 덩어리인 이 놈은 와인과 함께 먹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절반은 광장에서 계속 졸고 있던 늙은 개와 나눴습니다. 와인에 맥주까지 듬뿍 마신 터라 맞은편 산 중턱에 있는 호텔까지 걸어 올라가는 게 힘이 들긴 했습니다만, 포르투갈 다른 어느 곳보다 기분 좋은 하루 저녁이었습니다.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일부러 차까지 빌리기도 했지만 그러길 잘했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를 칭찬했습니다.


부슈 Bucho
모르셀라 아사두 Morcela Assado


호텔 쪽에서 건너 내려다보이는 피우당의 야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습니다. 높은 산지라 바람이 세찬데도 그 반짝이는 불빛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한참을 그러고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별의 산맥에서의 반짝이는 하룻밤. 어쩌면 이 곳의 '별'은 하늘이 아니라 산속에 내려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예전엔 길이 좁고 험해서 이 산속의 사람들은 거의 타 지역과 왕래를 하지 않고 살았다더군요. 그래도 지금은 세계 어디든 찾아다니는 단체, 중국인들을 태운 버스도 다녀갈 만큼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답니다. 대신.. 대부분 한 시간쯤 휙 둘러보고 치즈를 사서 떠나버려서 밤엔 이 산골의 고요함이 다행히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만. 이 아름다운 밤 풍경 역시 피곤을 못 이기고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시 올 거란 약속은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차분히 제 속에 새겨놓을 밖에요. 어떨 땐 이런 한 장의 그림이 여행의 전부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껀떠 Cần Thơ. 메콩 델타의 보석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