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지만
인도차이나의 도시들은 의외로 대중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방콕이나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같은 대도시들이야 물론 버스, 지하철에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있지만 여전히 지하철은 고사하고 시내버스도 없는 도시들이 많지요. 그건 수도라고 해도 마찬가지여서 대중교통이 충분히 운행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있다고 해도 노선이나 운행간격 같은 걸 알기 어려워서 여행자가 편하게 사용하긴 쉽지 않습니다. 미얀마의 수도 격인(행정수도는 중부의 네피도입니다만) 양곤 역시 시내 교통이 그리 편하지 않습니다. 양곤 시내에는 얼핏 보면 많은 버스가 다니고 있긴 하지만 정류장이나 인포메이션에서 버스에 대한 정보를 알기가 어려웠지요. 결정적으로 미얀마 버스엔 미얀마어로만 버스번호가 적혀 있어서 숫자를 알아볼 수가 없더군요. 노선 역시 체계적으로 전 지역을 커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공영버스가 아닌 차주가 버스와 운전기사를 고용해서 운행하는, 일종의 사설버스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양곤에 있던 2017년 1월 17일, YBS(Yangon Bus Service)라는 이름으로 시가 만든 노선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별로 노선을 정비하고 정류장마다 노선안내도 붙여 놓고 새로 만든 버스 노선도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홍보도 하구요. 심지어는 버스에 아라비아 숫자도 병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양곤을 싱가포르 같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힌 양곤시장이 제일 먼저 손을 댄 것 중 하나가 시내 교통 시스템이었고 그 첫 결과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양곤시민들도 좀 어리둥절한 분위기였는데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된 모양이더군요. 심지어는 시내버스 어플도 생겼답니다.
시내 교통은 그렇고, 교외와 양곤 시내를 잇는 교통은 버스 외에 대표적으로 양곤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순환열차가 있습니다. 남쪽 끝이 중앙역. 북쪽으로 원을 그리면서 37개 역을 세 시간 정도로 도는 기차입니다. 시계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하루에 열대여섯 번 정도 운행합니다. 기차는 아주 낡고 느리고 교외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갑니다. 당연히 부자들은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고 이 순환열차에는 학생이나 상인들이 타고 내립니다. 순환열차 노선은 부자동네인 인야호수 근처는 지나가지도 않지요. 오전에 중앙역에 가서 표를 삽니다. 중앙역에는 순환열차만 오는 건 아니어서 기차를 기다리는 양곤시민들과 저처럼 순환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일찍 기차에 올라 맨 구석에 자리를 잡습니다. 순환열차가 한 바퀴 도는 건 세 시간에서 세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만 그걸 다 도는 건 저 같은 여행자일 뿐, 시민들은 대부분 오래지 않아 내리니 제 주변의 사람들 역시 끊임없이 바뀝니다. 저도 맞은편 꼬마들과 눈장난을 치다가 그 사이를 막아선 할머니의 커다란 짐에 뭐가 들었나 궁금해하다 문득 끊임없이 통화를 하는 옆자리 아저씨를 흘겨보다 잠깐 졸기도 합니다. 교외의 텅 빈 벌판을 달릴 때는 뜬금없이 오래전 어느 날의 소풍을 떠올리기도 하고 머리에 '대야'를 높이 이고 기차에 오르는 아주머니를 조마조마 바라보게도 됩니다. 꽁야 행상 아저씨는 이 좁은 기차 안에서도 능숙하게 빈랑 잎에 석회를 쓱쓱 바르고 빈랑 열매를 넣고 말아 냅니다. 미얀마 사람들이 길가에 내뱉는 핏빛 침은 이 빈랑을 씹어서 그런 겁니다. 때로 입 안이 뻘겋거나 이빨이 검을 정도로 누렇게 보이는 것 역시 이 '꽁야'때문이지요. 시골마을 시장에 가면 한 집 건너 꽁야 파는 집일 정도로 많이들 합니다. 자기들은 좋아하는 기호품이지만 이게 보기에 안 좋다 보니.. 양곤시장께서 길에서 못 씹게 하겠다는 얘기도 하셨다는데 쉽진 않겠지요. 대만처럼 양성화해서 좀 정리를 할 수는 있겠지만요.
순환열차의 북쪽 Danyingon역은 커다란 시장과 이어져 있습니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서자 짐을 든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타고 곧 기차는 온갖 짐들로 가득합니다. 언제인지 전라도 어딘가에서 탔던 시골버스 생각이 나더군요. 할머니들이 버스 안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말다툼도 하시던. 아, 라다크 레에서 누브라 밸리 디스킷까지 고개를 넘어가던 버스도 겹쳐 지나갑니다. 닭은 물론, 작은 염소와 개도 함께 타고 가던 버스. 잠깐 동안 이 양곤 순환열차도 그런 분위기가 됩니다. 발 디딜 곳도 없이 짐으로 가득해진 기차에는 얼굴 생김과 말은 다르지만 그 전라도 시골의, 누브라 밸리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앉아 같은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양곤의 청담동 같던 동네들의 좋은 옷 입은 분들보다 이 기차에서 스친 양곤 사람들에게 훨씬 마음이 갑니다. 다곤 맥주 캔이라도 하나 들고 탔으면 좋았겠다.. 싶었지만 이상하게 기차 안에서 뭘 먹는 사람들은 전혀 없더군요. 아, 요즘 서울에선 보기 어려워진 신문 보는 아저씨들이 많은 것도 저는 좋더군요.
글을 쓰기 전에 잠깐 찾아보니 최근에 북쪽 일부 노선을 공사 중이라 한 바퀴 도는 '순환'은 하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내년 1월에야 공사가 끝난다네요. 혹시 올해 양곤에 가신다면 시계방향으로 도는 노선을 타고 Danyingon 역 정도까지 한 시간 남짓 갔다가 내려 시장 구경이라도 하시고.. 돌아오는 다음 기차를 타거나 YBS 버스(!)를 타고 인 야호수 근처로 와서 산책을 하셔도 좋겠네요. 근처에 양곤 대학도 있으니 캠퍼스 구경을 하셔도. 인구가 700만이 넘는 양곤은 아마 빠르게 현대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겁니다.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아웅산 수치는 미국이나 유럽 자본이 정치적인 명분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캄보디아 훈센처럼 중국에 대가를 치르고라도 자본을 끌어들일 테니까요. 이 거대하고 복잡한 나라 미얀마는 이제 막 깨어나고 있는 중이고 양곤 역시 빠르게 변할 테니.. 아마 몇 년 후에 제가 다시 양곤에 가게 된다면 어떤 걸 보게 되어도 놀랍지 않겠지요. 지금은 다나카 바른 수줍은 표정으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