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들은 엄마의 말이 아직까지도 생소하게 맴돈다. 우리 엄마도 엄마, 아빠, 오빠나 언니들과 있으면 '소녀'가 되는구나 싶어서 놀라웠던 기억이다.
비록 손에 꼽을 만큼 아주 가끔 갔을 뿐이라 나에게는 영 어색하고 불편한 외할머니 댁이었지만, 그곳에서만큼은 엄마가 마음 푹 놓고 쉬는 것 같아서 좋았다.
친정이란 그런 곳이지...
나의 아이들아, 이 엄마에게도 엄마와 아빠가 있단다.
열아홉,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던 때부터 부모님과는 거의 내내 떨어져 살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엄마와 아빠는 존재 그 자체로 위안을 준다.
나이가 들어서도..
다 컸다 싶어서도..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원망을 거두고 부모님을 더욱 이해하게 되면서, 애틋함과 그리움이 커지는 만큼 두려움도 더욱더 커지는 것 같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이 가까워올까 봐 조여 오는 마음이...
예전 어느 교육에서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한 유머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30대는 모이면 자식이나 남편 얘기에 여념이 없지만,
4~50대가 되면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리고 부모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고 한다.. 부모님 노후 걱정, 편찮으시면 간병 문제에 병원비 처리에...
어느덧 나도 그런 나이가 되어가는지,
유일한 안식처인 부모님들께 무슨 일이 생길까 괜히 겁부터 나곤 한다. 걱정보다도 슬픈 거다.
서로 사는 곳이 가깝기라도 하면 나을 텐데... 양가 모두 평생을 태어난 지방에서 터 잡고 살아오신 데다, 자식에게 부담 주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시니, 우리가 언젠가는 지방으로 내려가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돌봐드리며 살아가게 되려나 하는 생각도 조금씩 해보는데..
몇 해 전 쓰쓰가무시병에 걸리셨던 우리 아버지.
아마 밭일을 하다 모르는 사이 진드기에 물리셨던 모양이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는데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열이 떨어지지를 않으니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으셨단다.
자칫 위험하게 되었으면 어쩌려고 한참을 병원에도 안 가신 건지 처음엔 화가 났다.
그러다 워낙 건강 체질에 생전 병원 근처도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성격에 오죽 아프면 가셨을까 싶기도 하고..
가까이 살았으면 오래 두고 볼 것 없이 어떻게든 우리가 모시고 갔을 텐데, 며칠이나 고생하시기 전에 치료받으셨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한편으로 들었다.
이게 무슨 자식이냐며 죄송한 마음까지도.
심지어 나는 그걸 다 나으시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엄마는 자식들 걱정할까 봐 여간한 일은 말해주지도 않으신다.
그나마 아버지는 엄마가 돌봐주시기라도 하지, 엄마는....
일전에 외삼촌으로부터 엄마 데리고 병원에 좀 가보라시는 전화를 갑자기 받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서는 어린 조카를 업어 키우며 식모 노릇하고 살았다는 우리 엄마. 시집온 이후로도 고된 농사일에, 종일 시장에 쭈그리고 앉아 나물을 파는 행상 일로 생계를 꾸리고 평생 남을 돌보기만 하신 우리 엄마. 덕분에 몸은 여기저기 다 안 좋으시고 당뇨에 고혈압에 늘 약을 달고 사신다.
원래도 편찮으신 건 알았지만 근래에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디스크가 더 심해지셨던 모양인데... 통화로는 맨날 괜찮다고 하시니 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엄마도 그나마 친정 오빠에게는 솔직하게 얘기하셨는가 보다.
수도권에 병원이 더 괜찮으니 급하게 올라오시게 해서 MRI 찍고 다 해봤지만 답은 역시나 수술뿐이라고. 그런데 주위에서 다들 수술받으면 더 아프다고, 최대한 버티라고 한다며 수술도 사양하신 지 벌써 몇 년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전화를 걸지 않으면 생전 먼저 전화하시는 법도 없고...
(왜냐면 하는 일을 방해할까 봐 미안하시다고)
엄마의 허리가 어느 정도로 아픈지, 집이 평소 얼마나 춥고 더운지, 우리 집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사실 난 모른다.
혹시나 싶어 뭐라도 사서 보내봐야
아낀다고 잘 쓰기는 하시는지 어떠신지도 잘 모른다.
그러면서 '난 옷 많으니까
너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하며 매번 용돈을 주겠다고 하신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휴... 부모님들이란...
과연 나도 내 자식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아버지 칠순이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이제 또 몇 년 후면 엄마가 칠순이 되신다.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는 시간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그나마 같이 산 시간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이제는 더 길어지려 한다.
어디서 본 이야기 중에 어떤 사람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생전에 만들어두신 반찬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곰팡이 필 때까지 놔두고 보기만 했다는 글을 읽었는데..
마지막 남은 엄마의 손길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워 간직하고 싶은 그 마음... 짐작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부모님 동영상 많이 찍어두라고들 하던데, 친정에 가서 늘어져 쉬다 보면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늘 뒤늦은 후회만 안고 돌아온다.
게다가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만나도 걱정. 못 만나도 걱정.
어쩌면 코로나가 주는 두려움은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갑작스레 닥칠지 모를 이별에 대한 걱정이 아닐지...
신경숙 님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딸은 엄마의 집에 잠시 들르는 손님이나 다름없었던 것처럼, 나도 이제는 가끔 들러 극진한 대접을 받는 손님이나 된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