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Jul 21. 2022

무게중심이 내 마음 안에 자리하도록



지난달 온 가족 코로나 릴레이 확진을 겪고 난 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미루고 미루던 단발펌을 하러 미용실에 들렀다. 예약시간은 10시 첫 타임! 아이들 학교 유치원 보내고 청소기 한 번 밀고 나가기에 딱 좋은 시간. 그런데 도착해서 가운을 입으며 둘러보니, 아뿔싸,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럴 때 왠지 마음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나만 없었으면, 손님도 없고 룰루랄라 쉬면서 보내도 되는 시간을 방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디자이너님은 분주히 움직이느라 바쁘실 뿐 전혀 짜증 난 기색이 없음에도 괜스레 민폐 같아서 혼자 속으로 면박을 준다. 눈치도 없이 아침 첫 타임을 예약했다고...


아니, 영업시간을 어긴 것도 아니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어쩌면 커트 아닌 펌이라 돈 더 벌고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이미 얼굴은 뜨거워지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 


아니, 1년에 몇 번 가지도 않는 미용실. 

그 몇 시간 마주칠 뿐인 사람들. 

설령 진짜 실수를 좀 했더라도 내 인생에 큰 비중은 차지하지 않을 그런 관계. 

이게 뭐 대단한 곳이라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지... 뒤틀린 내 속을 내가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집에 정수기 코디네이터님이 다녀가셨는데, 난 또 이런 관계에 취약하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고객의 입장에 서있는데도 말 하나 실수할까 봐 괜히 긴장을 한다. 설령 엉뚱한 말 좀 하더라도 그 정도에 내 인생이 무너질 리 없고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줄 리는 더더욱 없는데 말이다. 


어제 따라 택시 기사님은 왜 이번 대선에서 누굴 찍었느냐며 곤란한 이야기를 물으시는 걸까... 


아마 서로가 친해서 예측 가능한 관계가 아니기에 더 긴장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깝지 않은 서비스적인 관계야말로 어떻게 되든 감정적으로 과도하게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세상에는 잠깐 스쳐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내향인의 비애일까.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좋게 통제하고 싶은 것일까.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비합리적 신념일까. 

난 모든 관계에 똑같이 이 악물고 힘을 주려 한다. 정작 그 사람들의 실제 마음이 어떤지는 모르는 채 '투사한 생각'대로. 그러나 타인의 마음들이 너무나 무거워 결국엔 휘청이고야 만다. 사람을 피해 숨어있고만 싶어 진다. 





어느 날 유퀴즈 방송에서 '밸런싱 아티스트'라는 분이 게스트로 나온 걸 보았다. 


심심할 때 손가락 위에 연필이나 숟가락 좀 올려본 사람이라면 다 알 법한, 그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양쪽의 균형이 딱 맞는 그 지점. 불안한 떨림을 멈춘 고요한 순간. 


우리의 삶도 타인과 나 사이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으면 마음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와르르 무너지고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히는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아무리 기를 쓰고 바둥거려봐야 중심을 잘못 잡은 상태에서는 어떤 관계도 바로 세울 수가 없다. 


이제는 좀 지난 일이지만, 맘고생을 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 자각한 것이 있다. 그 일은 객관적으로 내 잘못이 아니고 나야말로 괴로웠음에도 상대의 불쾌한 반응 때문에 어찌 됐든 나에게 먼저 잘못이 있을 거라고 찝찝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판단의 무게를 명백히 '타인'에게 두었다. 상처받은 내 마음이 아닌... 


그런 마음속을 지그시 바라본다. 미용실 의자에서도, 택시 뒷좌석에서도, 어디서든 알아차리면 무게중심을 다시 나에게로 옮긴다. 시소의 균형을 맞추듯 무겁고 중요한 건 가까이, 가볍고 사소한 건 멀찍이 두도록 한다. 관계가 조금 흠집 나도 괜찮다. 조금 바보 같은 실수를 해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투사적으로 신경 쓰지 않고 경계를 그어버린다. 묵직한 중심만 유지하면 금세 안정될 수 있으니... 


끊임없이 새로운 걱정거리들이 얹혀도 

내 마음을 가장 중심으로, 

내 마음을 가장 안전하고 무거운 자리에 놓아둔다. 

그렇게 나는 나를 충분히 존중하려 한다.  



(참고로 이 글을 작성한 시점은 4월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들었던 빗소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