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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개구리 Feb 21. 2022

젊음은 언제까지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이와 생각은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젊음'이라는 것을 규정할 때 육체적인 것으로 규정할 것이냐, 정신적인 것으로 규정할 것이냐에 따라 젊음의 경계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몸은 늙어가지만 생각은 스무 살 때 가지고 있던 마음 그대로다.

첫사랑의 설렘을 기억하고 결혼할 때의 떨림을 기억하는 나는, 단지 경험이 조금 더 생겼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그 남자, 그 아이일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에 서툴고 관계에 서툰 남자다.

그저 서툴지 않은 척하는 연기력이 늘었을 뿐...




올해로 나는 마흔한 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세련되지 못했고 아직도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콤플렉스는 20대 때보다 더 강해진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이 콤플렉스를 돈으로 숨기고 싶어지는 심리가 더 강해지는 것 아닐까. 그럼 쿨한 연기를 하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 같으니까.


주변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삶이 달라진다. 결혼을 하면서 변화의 가속이  커지고, 아이가 생기면 극적으로 변하는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 정신은 변한 것은 없다.  그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뛰어놀던 친구였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

우리는 타인의 기대에 맞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있다. 30대의 . 40대의 . 아들의 . 남편의 . 아빠의 . 우리가 그려왔던 시기별의 청사진에 나를 맞추고 남들의 시선과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더해진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

이런 것들이 미래의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때로는 그 기대가 버겁고 내뜻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려 한다.

그것이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을  있는 일반적인 길이니까.




나의 젊음은 영원하지만 사회적 젊음은 끝이 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여전하지만, 사회에서는 이제 그만하라며 무언의 압력을 준다.


나는 그것들을 이겨내고 끝까지 완주할  있을까? 완주하더라도 관중들의 박수 받을  있을지, 아니면 모두 끝나버린  경기장의 결승점을 쓸쓸하게 통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공포감이 우리의 정신적 젊음을 빼앗고 사회가 바라는 패러다임에 맞게 살아가도록 한다.


그렇다면 젊은은 언제까지일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을  까지다.

내가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을  까지다.

내가 결심하는 순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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