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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quniill May 20. 2019

낮말은 이대리가 듣고,
밤말은 김과장이 듣는다

제12 일꾼의 말

"낮말은 이대리가 듣고, 밤말은 김과장이 듣는다는 거 아니? 

직장생활에서 말만 조심해도 절반은 성공이란다."

제12의 일꾼_22년간 미디어에서 일했습니다. 지금은 은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유형의 일꾼이 있다. 일 미루기 신공을 보이는 일꾼, 항상 날이 서있는 고슴도치형 일꾼,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나을 듯한 무기력한 일꾼, 상황따라 말이 바뀌는 갈대형 일꾼, 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편가르기 일꾼 등등. 


그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일꾼을 만났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주의해야 할 일꾼은 바로 이들이다. '빅마우스(Big Mouth).'


직장마다 한 명씩은 있는 빅마우스 일꾼은 사내 소식통이다. 'A일꾼과 B일꾼이 술자리에서 신경전을 했다'는 소식부터 앞으로 있을 인사이동 정보와 동료 일꾼의 퇴사 정보를 훤히 꿰고 있다. 사내에서 쉬쉬하며 애정 전선을 형성 중인 일꾼들도 꼭 빅마우스에게 발각된다. 


이들에게는 정보가 끊길 날이 없다. 말을 옮길 때마다 다른 이야깃거리가 더해지니까. "그 얘기 들으셨어요?"로 말문을 열면 이들 주위에는 일꾼들이 모이고, 모인 일꾼들은 빅마우스의 정보에 저마다 한 마디씩을 보탠다. 이렇게 모인 말들은 추가 정보가 돼 다른 일꾼들에게 전해진다. 빅마우스에게 정보는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기 때문에 끊임 없이 말을 하고 옮겨야 한다. 


그래서 탈이 난다. 


사람들이 모여서 비밀스럽게 나누는 이야기는 대부분 다른 이의 뒷담화나 부정적인 소식이고, 사람들의 입을 거친 이야기는 본래 내용과 달라지는 탓이다. 빅마우스의 입에서 시작된 말은 사무실을 굴러다니며 몸집을 키우고 몇몇 일꾼을 깔아뭉갠다. 또 내 앞에서 다른 일꾼을 뒷담화하는 이가 다른 일꾼 앞에서 내 욕을 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는 순간, 일꾼들의 입은 칼이 돼 서로를 찌른다. 그래서 빅마우스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퍼뜨린 말을 보태거나 옮기는 순간 당신은 공범이 된다. 


빅마우스와 그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한 일꾼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간 일을 접한 적이 있다. 시작은 "A일꾼이 B일꾼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였다. 다른 일꾼들이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A일꾼이 B일꾼 없는 단톡방에서 욕을 한 적 있어요", "성적인 이야기도 있지 않았어요?", "A일꾼이 B일꾼한테 밤에 전화도 했다던데", "B일꾼 미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야기는 A일꾼을 사내 인사위원회 앞에 세웠고, 결국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이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지내던 A일꾼은 결국 회사를 나왔다.  


직장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대개 말에서 시작된다. 가시 돋힌 말이 오가고, 서로 뒷담화를 하고, 당사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말이 퍼진다. 너무 당연해 진부해진 탓인지 우리는 말의 무거움을 자주 잊는다. 가볍게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깊숙히 박힐 수 있는지를 말이다. 매일 사무실 안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일꾼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12의 일꾼이 진짜 꼰대야. 어제 회식자리에서는 몇 시간 내내 옛날옛적 이야기를 하더라니까. 난 졸았잖아."


사회초년생 시절 회사 앞 카페에서 동료 일꾼들과 직장상사 뒷담화를 한 적이 있다. '쇼미더머니급' 뒷담화 배틀이 이어지던 중 옆에 앉은 동료가 내 팔꿈치를 툭툭 건드렸다. 동료의 곁눈질을 따라간 곳에 당시 직장상사였던 열두 번째 일꾼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뒷담화가 들리고도 남을 위치였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한 제12의 일꾼은 잔뜩 긴장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생각보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말은 이대리가 듣고, 밤말은 김과장이 듣는다는 거 아니? 직장생활에서 말만 조심해도 절반은 성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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