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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드 Aug 18. 2024

다시 축제를 위하여


호수

2024년 '0시 축제' 마지막 날.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까지 차 없는 거리.


교통통제 현수막

쇠기둥에 묶여 있다.


선화동으로 우회해서

빠져나가야 한다.


멀리,

뭉게구름이다.


멀리라는 말,

외국어 같다.




스물두 살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교통통제.

길 없음.

막힘.


스물두 살이라는 축제는

비유가 아니다. 

실감이다.


다만, 당시 내 나이가 적었는지 많았는지

지금도 가늠이 안 된다.


축제 아닌 나이가 어디 있을까.

가물가물해질 뿐.


스물두 살, 휴학하고 

시골에서 아픈 엄마를 돌봤다. 

수업도 과제도 없는 나날은 징벌이었다. 

엄마는 내키는 대로 수면제를 사 왔고

약에 취해 고꾸라졌다.


딸이 곁에 있음과 없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엄마의 못된 병이

끝나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 병, 빈 술병이 쌓여갔다. 


메뚜기 뒷다리를 부러뜨린

유년의 죄가 떠올랐다. 


저녁 논길에서 엄마와 나눈 

허허로운 대화도 논두렁에 앉아

동시에 쏟아냈던 오줌도 허망했다.


옥상, 찬장, 옷장에서는 

귀신이 출몰했다. 


술병을 싱크대에 콸콸 쏟아냈고

술병을 포대에 았다.


그렇게 스물두 살을 채웠다. 


그래, 흉이다.


가난하고 갈 데 없었던 나는

나를 동정하는 편에 서서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문장을 단숨에 쓰기까지

이십 년이 걸렸다.


철딱서니 없다 해도

별도리가 없다.


애인을 만날 때도

강아지를 키울 때도

화초를 기를 때도

복학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라는 탈을 쓴 나는

곧잘 울적하게 굴었다.


'쟤는 원래 저래.'


동정과 자책 너머가 있을까.

세상은 칸막이로 막혀 있을까.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게 뭔지도 몰랐다.


맨 처음 산 시집은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


얇은 청춘과

작은 사랑처럼.


시집은 얇고 글씨는 작았다.

쥐구멍 같은 스승.


호수가 투명했다.

건너고 싶었다.




잘 나가는 가수가

0시 축제 무대에

오른다.


잘 논다.

놀다 가면 

그만인 .


호수를 건너

쥐구멍을 건너

여기까지 왔나.


스물두 살이라는 통제로부터

풀려난 걸까.


오늘 축제는 끝이 났다.

다음 축제를 위하여,


교통통제 현수막은

수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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