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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드 Jul 21. 2024

마음천자문 읽는 주말


쪼그려 읽는 맛

꼼짝없다.

줄줄 아이들이 태어난 후로

한동안 평일도 주말도

꼼짝없는 신세였다.


신세라는 말을 하자니

애처로워지는데

아이를 낳은 게 이리

신세 타령할 일인가.


내 시간 내 장소 내 마음을

점점 잃어가면서

'신세''팔자'니 하는

단어를 친구로 삼았다.


아이들이 버젓이

까꿍거리고 뒤뚱거리며

기적쇼를 벌이는 와중에도

꼬꾸라는 드는

이 심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이들이 혼자

그림책을 읽을 때쯤

피난처처럼 들락거린

어린이도서관 지하 1층.


그러면서도 나는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집중? 홀로?

사색하고 싶었다.


둥근 철기둥에 기댄 채

아이들 꽁무니를

물끄러미할 뿐.


'꼼짝없이'라는 부사어는

미끄럼틀에서 신나게 미끄러졌다가도

이내 다시 기어올라갔다.



무시무시한 문이 있는 장면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매일 글을 쓰고 올리고

마음을 적고 풀고

지지고 헹구고

싶었다.


꼭 노트북이어야만 하는가?

왜 꼭 책상이어야지?


마법천자문을 펼친

아이 곁에서

브런치앱을 켠다.


마법처럼

엄지손가락을

톡 톡 두들긴다.


꼼짝없는 주말 오후

엄지손가락이 논다.


내 마음 한줄 누르는 일이

이다지도 기쁠까.


아이가 펼친

장면을 본다.


"헉! 뭐, 뭐예요?

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문은"


아이에게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문이

뭐냐고 물어보니


'몰라' 그런다.


그래,

꼼짝없는 이 마음을

실은 나도 잘 몰라.


그치만 오늘은

앱을 열었고

엄지손가락이 움직여.


문을 열면

기분 감정이라는

나방들이

꼼짝꼼짝한다.


언제쯤 마음천자문을

다 해독할 수 있으려나.


아들아, 마법천자문 몇 권째야?


오늘치 마법을 다 읽었으면

이제 그만 반납하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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