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어릴 적, 순간의 거짓말로 눈앞의 위기를 넘기려다 오히려 더 크게 혼나셨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또는 직장에서 단기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가, 결국 더 큰 손실을 초래한 경험은 없으셨는지요?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이와 유사한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SNS 상에서 무심코 한 발언이 커다란 논란으로 번지거나, 기업이 매출 증대를 위해 택한 단기 전략이 브랜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사의식’입니다.
역사의식이란 단지 과거의 사건들을 암기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판단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상상하는 힘’, 그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역사의식은 우리 삶과 사회를 시간적 흐름과 인과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즉, 하나의 사건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그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맥락,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결과까지 함께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중국 근대 지식인 루쉰(魯迅)의 말은 역사의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만약에 말이네.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쇠로 만든 방이 한 칸 있다고 치세.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을 거야.
하지만 깊이 잠이 든 상태이니 죽음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겠지.
그런데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비교적 의식이 있는 몇 사람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 사람은 가망 없는 죽음을 의식하게 될 텐데, 자넨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하지만 기왕에 몇 사람이라도 깨어난다면,
그 쇠로 된 방을 깨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 루쉰, 「자서」 『외침』
이 인용은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
루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쇠로 된 방처럼 숨 막히는 현실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몇 사람이라도 깨어난다면, 그 깨어남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필요한 행동은 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식을 가진 자의 태도이며, 역사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 왔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또한 역사의식의 대표적 예시입니다.
당시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당장의 결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래의 조국’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행동이 의미 있다는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과 실천이 모여 결국 조국의 독립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역사의식은 거창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상에서 어떤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의 생각과 행동이 미래의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깊이 있게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말과 행동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시간이라는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당신 자신의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