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서평단을 신청했다가 취소한일이 있다. 그런데 며칠뒤에 그책의 서평단에 당첨됐다며 책을 보내주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시스템상의 오류로 취소가 안됐던 모양이다. 여튼 그렇게해서 책이 별로이면 중간에 덮을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책이 바로 '루시드 드림'이다.
'제 5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수식어로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단번에 정확히 무슨의미인지가 와닿지는 않았다. 카카오페이지라면 브런치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덜트소설상이라면 대상이 청소년인지, 작가가 청소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이러나 저러나 상을 받은 것을 보니 평균이상은 하는 소설이려나, 하는 약간의 기대감이 있기도 하였다. 애초에 그런 호기심으로 신청을 한 것이긴 하다.
이렇게 장확하게 서두에 운을 띄우는 이유는 이 소설이 의외로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일단 나는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영화 등의 창작물에 크게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기는 했다. 최근에 본 몇편의 한국드라마로인해 그 오랜 편견을 바꿀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소설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만한 괜찮은 소설은 못만나보긴 했다. 사실 내가 괜찮은 소설을 만나기엔 한국 소설을 읽는 일이 가뭄에 콩나듯 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읽은 것도 별로 없고, 사실상 잘 모른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 같기는 하지만, 여튼 읽은 소설들은 내게는 다 그냥 그랬다.
이 책은 뭐라 설명하면 좋을까. 문장력 자체는 나쁘지않은 정도라거나 혹은 매끄럽다고 할만한 정도이다. 많은 문장이 밑줄을 긋거나 적어두고 싶은 그런 책은 아니라는 말인데, 책이 굳이 그래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는 한다. 소재와 스토리라인은 어떻게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대체로 어른들이 전염병처럼 잠에 빠져들어서 깨어나지 않는 일이 벌어지니 말이다. 여튼 설정 면에서는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나서는 그나름대로 탄탄한 구성과 전개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좀 거슬린뻔도 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들어진 것이 문장의 어조였다. '요즘' 젊은 애들이 쓰는 말투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조심스럽고 서로를 배려하는 표현과 어조가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초반에 어른들이 모두 잠들고 거의 아이들만 하루하루 연명해가고 있는 상황이 마치 좀비물을 연상케했지만, 책 전반을 아우르는 그 어조가 이 소설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 읽고보니 그것이 참 신비로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를 지금 말하려고 하는데, 바로 이 소설이 다 읽고보니 비유적으로는 '각성', 잠에서 깨어남에 대한, 사실상 청소년의 어른됨, 성장에 관한 소설이었다는 점이다. 소설의 몇가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징검다리를 놓으며 변주를 하는 느낌이다. 내게 그 요소들은, 2029년이라는 '가까운 미래', 어른들이 없는 '아이들만의 무법천지', 핸드폰, 전기가 없는 세상, 잠 듦과 깨어남 혹은 깨움, 보살핌과 사랑, 뭐 그런 것들이다. 어디하나 도드라진데가 없는 소설이지만, 바꿔말하면 무엇하나 두드러진데가 없는 소설이기도 한데, 읽고나니 작은 울림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내게 이 소설은, 우리 세대는 생각하는 것만큼 형편없지 않아요, 라고 대변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