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김범석
사실 처음에는 좀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생각보다 담담한 어조로 진행된다. 작가는 환자의 상황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며, 남겨진 이들에게 막연한 위로도 하지 않는다. 작가도 일찍 아버지를 보내고 혼자서 견뎌야 하는 몫이 많았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의 입장에서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조언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또한 얼마나 많은 환자와 죽음을 경험해야 이렇게 삶에 대해 겸허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책을 덮고 가장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은 17년간 함께한 반려견의 죽음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었는데, 내가 사랑하던 존재가 세상을 떠난 날, 내 세상은 그렇게 무너졌다. 작가는 ‘남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내 몫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 상실감과 슬픔은 어떤 걸로도 채울 수 없는 내 몫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글도 써보고, 눈이 일찍 떠진 아침에는 산책도 해봤지만, 어떤 행위로도 그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남겨진 이들은 결국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최근에 본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힌트를 찾았다. 이 영화는 남겨진 이들에 대한 상처와 치유의 이야기인데, 결국 죽음과 고통을 직시하고,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포용할 때 비로소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책에서 나온 많은 환자들도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확실한 것은 죽음을 스스로 또렷하게 마주한 자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개인이 경험한 절망, 상처나 고통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직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타인과 함께하거나 도와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은 완전하지 않으며 결국 마지막 계단은 혼자서 올라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죽음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지는 그 순간이 와야지만 알 수 있겠지만, 모두가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과 부재를 겪어보니 소중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나보낸 순간들이 생각난다. 살아가면서 언제든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순간들이었는데, 돌이켜보니 그런 순간들은 그것으로 영원한 작별이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참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들 덕분에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떠나간 이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으며 남은 이들의 삶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주어진 날들을 버텨내고 살아가며 마지막엔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린 살아야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우리, 남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기로 해요. 앞으로도, 늙어서도, 그러다가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우리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요. 그리고 무덤 너머 저 세상으로 가서 말하기로 해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었고 슬퍼했는지 말이에요.” - 안톤 체호프의 책 '바냐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