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름 북토크 #1
어쩌다 여름에 태어난 세 친구가 같은 걸 보고 다르게 느낀 생각들을 적습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튀는 대화를 즐기며, 마지막엔 늘 철학적 질문으로 끝납니다.
Q1. '대도시의 사랑법' 이 책이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 재치가 흘러넘친다. 예를 들면 '우럭 한점 우주의 맛'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들이 있다.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 퀴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어쩌면 논문보다 소설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 가독성이 높은 것도 큰 장점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책을 다 읽은 후 여운이 남았다기 보단 쉽게 휘발된 것 같다.
Q2. 제일 좋았던 단편은 무엇인가요?
- 단연코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사실 이 단편이 이 책에서 가장 긴 단편인데, 보통 제일 긴 단편이 제일 좋기 마련이다. 보통 작가들은 본인이 제일 전하고 싶은 생각들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쉽게 읽히지만 그래도 쉽게 쓰진 않았구나 느꼈던 단편이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다. 이 단편엔 각각 엄마와 형이 나오는데, 엄마는 기독교를 믿으며, 동성애를 병으로 취급한다. 또 형은 운동권 출신이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고치는 첨삭 활동을 하고 있다. 즉 그들은 퀴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당시 사회를 대변한다. 이런 구조 자체를 볼 때 작가는 글을 그냥 쓴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에서 엄마와 영의 관계가 인상 깊었다. 영이 직접적으로 엄마를 용서했다고 하진 않지만,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봤을 땐 결국 마음으로는 용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그저 그녀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옥죌 의도가 없고, 나 역시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 나도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결국엔 좁혀지지 않은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단편에서 특히 그 부분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영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가족이니까'라는 미명뿐인 짐을 내려놓길 바란다.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지키는 성을 쌓아 부디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Q3. '재희'에서는 K3가 영에게 이런 문자를 남깁니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P.67)" 집착이 사랑이라는 말에 공감하시나요?
- 집착은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지 못해,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방의 의사 따위는 무시하는 행동이다. 즉 나를 향한 방향이다.
- 반면에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더 해줄 것인지 마음에서 우러나오기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즉 상대방을 향한 방향이다.
Q4. 박상영 작가의 이번 단편집에서는 침대는 그의 연인들 혹은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과거 혹은 현재 사랑의 상징이 되는 물건이 있나요?
※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답변이므로 이 부분은 패스합니다.
Q5. 박상영 작가가 그린 대도시는 현대인들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전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독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그런 고독을 이겨내는 자신의 방법이 있다면?
- 외로움과 고독의 개념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할 때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이다. 반면 고독은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느낄 수밖에 없는 기본 전제 조건과 같다.
- 그래서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누려야 한다. 고독에서 도망치는 건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신중하게 나아갈 수 있는 현명함을 잃어버린다. 고독은 체념일 수도 있고 힘일 수도 있다.
Q6. 대상에 대한 열망 VS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열망 중 나의 경향/선호는 무엇인가요?
- 허무주의 사상을 보면 "모든 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내가 몰두함으로써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엔 대상의 존재가 중요하기보다는 대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Q7.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저무는 것은 아름다운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동안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특히 동성애에 대하여 얘기하는 사람들은 그게 누구 건 무슨 내용이건 이유 없이 패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다 똑같은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P.169)
- 이 구절을 읽고 잠깐 퀴어 소설이나, 퀴어 영화를 보고 느꼈던 내 감정들이 부끄러워졌다. "그들도 다 똑같은 사람이야. 우리와 그저 다를 것 없는 사랑을 하고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정말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가? 똑같다는 건 무엇인가. 결국엔 박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그는 내게 있어서 사랑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게 규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규호의 실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랑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307)
사랑에 같은 것은 없다. 사랑은 다 개별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