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지만 끝나지 않았다
브런치 다음 편은 ‘지하방 리모델링 전후 대공개’였는데 공사가 끝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올리지 못했다. 오늘은 그에 얽힌 (골치 아픈) 사연이다.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일단 지하방 리모델링 후의 모습을 공개한다.
먼저 (이제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리모델링 전 모습부터.
그리고 리모델링 후,
리모델링을 거치고 지하방은 몰라보게 변신했다. 압구정 성형외과 광고판에서나 볼법한 극명한 전후 차이를 보여주었다. 리모델링하면서 심각한 자금난에 휘둘릴 때, 우리의 모든 수입이 유령처럼 통장을 스쳐갈 때, P실장님이 대출까지 받아 공사를 진행하던 그때, 우리와 두 실장님들 간에 하던 놀이가 있었다.
이름하여 '지하방 월세 책정하기' 놀이였다.
원래 우리 집 지하방은 보증금 200에 월 10만 원이었다. 샤워실만 내부에 있고 화장실은 외부에 있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냥 지하방을 폐쇄를 해버릴지, 화장실을 만들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지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공사를 강행했다. 지하에 화장실을 만드는 데만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지하가 1,2층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벽지, 장판 등 비용도 거의 두 배씩 들었다. 공사금에 비틀거리면서도 지하방 스펙은 낮추지 않았다(못했다). 지하방은 돈을 투자한 만큼 예뻐지고 있었다. 두 실장님들이 동네 부동산 시세를 보러 다닌 것도 이 즈음이었다.
- P실장님: 주변 시세를 보니 전세 OO까지도 가능할 것 같아요.
- 정자매: 저희는 월세가 좋을 것 같아요. O에 O은 어떨까요.
부동산에 문의하면 대략적인 시세가 바로 나오겠지만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 많은 이 동네 특성상,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부동산 아저씨한테 집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집들과 비교해 가격을 책정하기에도 애매했다. 우리 집 지하방은 (내 눈에는) 이쪽 동네에서 가장 럭셔리한 지하방이었다. 크기도 스물한 평으로 작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가격을 정하기 시작했다. 먼지 풀풀 날리는 거실 자재 위에 넷이 모여 앉아 계산기까지 열심히 두드리며 보증금 계산을 하던 그때. 우리는 꽤나 신나 있었다. 이 놀이를 통해 우리 넷은 공사비 독촉이라는 암담한 터널을 보증금이라는 빛을 보며 굳건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넷 중 그 누구도 숫자와 부동산에 밝지 않았고, 집의 시세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지나치게 내부자들이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 하나 없이 (오로지 우리의 판단에 기반해) 보증금과 월세를 정했지만 우리의 최측근이 전세로 들어오게 되면서 월세 책정 놀이는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지하방을 본 것도 최측근뿐이라 지하방의 객관적인 시세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지하방에 허리가 끊어질만한 공사비가 들긴 했지만 최측근이 입주하기로 했기 때문에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리모델링 공사는 시끄럽게 시작되었지만 완공은 조용했다. 1,2층도 마음에 들었지만 아픈 손가락이었던 지하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지하방을 포기하지 않고 공사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하자마자 우리 집 공사에만 매달려오신 P실장님은 완공 다음날 홀가분하게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떠나셨다. 여기까지는 분명히 해피엔딩이었다.
며칠 뒤 오후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확인해보니 부동산 아저씨였다. 한 남자와 함께였다.
- 무슨 일이세요?
- 지하방 손님 데리고 왔습니다.
- 네? 저희 부동산 내놓은 적 없는데요?
- 공사 끝난 거 아니었어요? 지하방 볼 손님 데리고 왔는데?
- 저희 지하방 사람 벌써 구했는데요?
- 우리 부동산에서 왜 안 했어요?
- 지인이 들어와서 부동산 안 끼고 저희끼리 계약했는데요?
- 아 큰일이네. 오늘 저녁에도 집 보러 다른 손님 오기로 했는데.
- ;;;
그랬다. 이래서 우리가 부동산을 통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집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지하방을 본 적도 없는데, 가격도 전혀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손님부터 데리고 오다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동네에서 상식 밖의 일을 여러 번 겪은 상태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단 하나, 손님으로 데려온 남자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한눈에도 고시생 같은 느낌이었다. 부동산 아저씨는 우리 집 지하방을 여느 반지하집처럼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우리 집 지하방은 ‘반지하-프레스티지’란 말이다!!!!(라고 속으로 외쳤다).
이 소소한(?) 에피소드가 발생하고 이내 장마가 시작되었다. 폭우가 며칠째 쏟아졌다. 집들이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지하방을 보여주려고 들어간 참이었다. 신나게 지하방 공사에 대해 설명하는 데 발이 축축했다. 살펴보니 지하방 복도 한 곳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천장은 아니고 장판 틈에서 새어 나오는 물이었다. 물은 하얗게 페인트로 칠한 벽을 타고 귀신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 장면이 나에게는 공포영화처럼 느껴졌다.
지하방 물기, 곰팡이와의 사투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