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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Oct 13. 2019

치열한 리모델링과 그 후의 일상 6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1층 심리상담소와 독서모임에 이어

지난주 최측근까지 지하방에 입주하면서

드디어 정자매 하우스가 완전체가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다. 때는 서른 초반, 내 인생에서 '매달 25일 월급이 들어오던' 가장 안정적인 (그래서 가장 권태로운) 시기였다. '뭘 하고 싶은지' 보다는 '뭘 해야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목적 없는 순수한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배워서 딱히 사용가치가 없을 것 같은 취미생활도 전무했다.


회사생활은 괴로웠다. 스스로 나는 지금 '종갓집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며느리이며 상사는 '시어머니'라고 나름 설정을 붙여 캐릭터로 괴로움을 승화시켜 보려고도 했다. 3일에 한 번 꼴로 시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다 하루는 상사가 불렀을 때 '네~어머님'이라고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와 당황한 적도 있다)


몸에 사리를 만들어가면서 번 돈은 (당시 남자 친구도 없었음에도) 결혼자금 명목으로 저축되었고, 20년 후 만기가 되는 연금보험에 매달 적지 않은 돈이 빠져나갔다. 철저히 미래만을 위한 삶이었다. 현재는 그 미래를 위해 희생되고 있었다.


그래서 제 발로 독서모임을 찾았다. 독서모임의 주인장은 '현재를 살 것'을 강조했다. 최대한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를 풍부하게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그렇다고 오늘을 망나니처럼 살라는 말은 아니다). 낯선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아닌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고민했다.

 

7시 반 시작인 독서모임은 매번 열두 시를 훌쩍 넘겨서야 끝났다. 나도 모르던 나의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 좋았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집에서 지낸다면 조금은 이상적인 공동체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우리가 덜컥 집을 사게 되었고, 우리가 살 공간을 제외하고도 두 개 층이 남았기에 독서모임에게 '입주 러브콜'을 보냈더니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S씨와 같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호기롭게 시작되었지만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원래 독서모임은 서대문에, 심리상담소는 삼청동에 있었다. 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허리가 휘어질 만큼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1/3 수준의 임대료에 두 분이 같이 공간을 공유하기로 결정하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첫 번째 문제. 독서모임은 일주일에 다섯 번 저녁에 진행되는데 열 명정도 같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모두가 모여 앉을 수 있는 큰 거실을 만드려고 계획했지만 벽을 허물게 되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기존 독서모임 공간이 10평이었는데 이대로는 그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 리모델링 공사비가 당초 계획의 두 배를 넘어섰다. 공사 마감이 가까워졌을 때는 매주 공사비가 천만 원씩 추가될 정도로 버거운 상황이었다. 실장님들은 비용을 줄이려면 1층의 바닥, 벽, 조명, 가구들의 스펙을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생과 고민 끝에 힘들더라도 독서모임 공간은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고, 2층과 같은 스펙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다행히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문제. 독서모임이 거의 10년 만에 나간다고 하자 건물주가 임대로 50% 삭감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며 붙잡은 것이다. 당시 1층은 독서모임 공간 콘셉트로 거의 공사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독서모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제안이었기에 우리는 마지막에 독서모임이 들어오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독서모임 주인장도 이에 흔들리지 않고 우리 집을 선택해주었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6월 심리상담소, 8월 독서모임, 10월 지하방이 차례로 입주해 최근에서야 모든 층에 불이 켜지게 되었다. 거실이 좁아 독서모임을 하기에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멋진 해결책이 생겼다. 마당에 큰 테이블과 의자를 펴놓고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마당 #독서모임 #낭만적
리모델링동안 머릿속에서 이 풍경을 그려왔다
모임 참여자분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


나는 일요일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예전 독서모임을 갈 때는 40분 전에 집에서 출발해야 했는데 이제는 바로 한 층 밑으로만 내려가면 된다. 이 점이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마당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창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선선한 가을바람과, 담장 너머로 익어가는 감나무와, 손안에 있는 커피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그 순간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앞으로 살면서 이 순간을 종종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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